逐玉 축옥 원작소설 제8장

제 8장 혼례 첫날 밤

혼례날 아침 일찍 일어나 돼지를 잡고 장조림을 만들어야 했던 번장옥은, 아마도 역사상 가장 분주한 신부였을 것이다.

전에 팔려고 잡았던 돼지에서 남긴 내장과 머리로 장조림을 만들어두었던 게 있었다.

오늘 돼지까지 합치니 두 대야 가득 얇게 썬 장조림이 나왔다.

도우러 온 아주머니들은 냄새만 맡아도 맛있겠다며 연신 칭찬했다.

거의 정오가 다 되어서야 조 아주머니가 그녀를 방으로 들여보내 혼례복으로 갈아입고 단장하게 했다.

번장옥은 그때서야 조 아주머니한테 데릴사위 혼례에는 두 가지 풍습이 있다는 걸 배웠다.

하나는 신랑을 꽃가마에 태워 신부 집으로 데려오는 방식으로, 흔히 ‘신랑 머리 들여오기’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일반 혼례와 비슷한 방식으로, 신랑은 전날 신부 집에 미리 와 있고 신부가 외가에서 꽃가마를 타고 성대하게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신랑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방식이었다.

번장옥은 둘 다 해당 사항이 없었다.

우선 꽃가마를 빌릴 돈이 없었고, 신랑은 바로 옆집에 있었다.

계단만 내려오면 바로 혼례를 치를 수 있는데 그런 요식 행위가 필요할 리 없었다.

혼례 진행을 도와줄 예식 아주머니가 불려와 혼례방을 꾸미고 단장을 도왔다.

“첫 번 빗질엔 백년해로, 두 번 빗질엔 백발이 될 때까지 함께, 세 번 빗질엔 자손이 가득…”

번장옥은 경대 앞에 앉아 예식 아주머니가 ‘십소례(十梳禮)’를 읊는 소리와 밖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리를 들었다.

잠깐 동안은 진짜로 시집을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밖에서 손님들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것은 오늘의 신랑 이야기였다.

하지만 조 아주머니는 입이 무거워서 여자들이 어떻게 캐 물어도 단 한마디도 흘리지 않았다.

아주머니들 몇몇이 모여 앉아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수군댔다.

“조 씨 내외가 저렇게 감쪽같이 숨기는 걸 보면, 혹시 신랑이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 그런 거 아니야?”

“다리를 다쳐서 제대로 못 걷는다던데!”

누군가가 숨을 들이켰다.

“그럼 불구란 거야?”

옆에 앉은 사람이 팔꿈치로 그 여자를 슬쩍 찌르며 목소리를 낮췄다.

“아무렴, 번가가 데릴사위를 들이는 거잖아. 멀쩡한 남자가 데릴사위로 들어오겠어?”

모두들 한숨을 내쉬었고, 누군가가 송연 얘기를 꺼냈다.

“번가와 송가가 정말 완전히 틀어진 것 같더라고. 이 골목 사람들이 다 왔는데 송가만 없잖아.”

“차라리 송가가 안 오는 게 낫지. 송연이 십 리 안에서 제일 잘생겼다잖아. 그 사람이 왔다가 신랑이랑 비교되기라도 하면 번가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는 거 아냐!”

왁자지껄 떠드는 와중에 길시(吉時)가 되자, 모두들 조 씨네 대문 앞으로 몰려가 신랑을 보려고 목을 빼고 기다렸다.

정작 붉은 면사포를 쓰고 나온 신부 번장옥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늘 날씨는 정말 협조적이지 않았다.

오후 들어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마당 담벼락 위에 얇게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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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바닥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밟고 지나다닌 덕에 눈은 쌓이지 않고 젖은 자국만 남아 있었다.

조 씨네 대문에 걸린 폭죽이 요란하게 터졌다.

사람들이 문 안쪽을 뚫어지게 바라보는데, 제일 먼저 목발 두 개가 문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역시나 —

번장옥이 정말 불구를 데릴사위로 들였구나, 하고 마음이 가라앉는 순간이었다.

목발이 움직이며 신랑의 한 발이 문지방을 넘어섰다.

구경꾼들의 시야에 짙은 붉은 빛 도포 자락 반쪽이 들어왔다.

솜털 같은 눈송이가 도포 위에 내려앉았다 곧바로 녹아 희미하고 작은 얼룩만 남겼다.

떠들썩하던 구경꾼들이 왠지 모르게 숨을 멈췄다.

신랑의 나머지 발이 문지방을 넘고, 그가 집 안 그늘에서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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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리본으로 묶인 먹빛 머리카락 위로 눈송이가 내려앉았고, 새까만 머리카락과 붉은 옷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빼어나게 준수했다.

내리는 눈보다도 더 흰 피부에, 문 쪽을 향해 차갑게 던진 눈길 하나에 보는 사람들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 얼굴을 본 손님들의 입에서 일제히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토록 잘생긴 젊은이는 살면서 본 적이 없었다.

송연을 뛰어넘는 것은 물론, 극단에서 온 배우도 이 신랑의 십 분의 일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었다.

칼 같은 눈썹에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 옥을 다듬어 놓은 듯한 얼굴은 흡사 신선의 풍모였다.

잠시 어리벙벙한 침묵이 흘렀다가, 이내 아까보다 훨씬 더 시끌벅적한 소란이 터졌다.

“신랑이 정말 잘생겼다!”

“장옥이처럼 예쁜 애가 못난 사람한테 시집갈 리가 없었지!”

“아까 누가 신랑이 못생긴 불구라고 했어? 이 얼굴이 송연보다 못하다고?”

사정은 목발을 짚고 무표정한 얼굴로 법석대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쳤다.

미간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좁혀졌다 —

수다스러운 여자들이 소란스러운 모양이었다.

모퉁이를 돌아 번 씨 집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마당에서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한담하던 손님들까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목소리 중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은 그의 외모를 칭찬하는 말이었다.

부엌에서 일하던 아주머니들도 신랑이 엄청나게 잘생겼다는 소리를 듣고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나와 한번 보고야 말았다.

사정은 미간의 짜증을 꾹 누르며 구경꾼들에 둘러싸인 채 대청으로 향했다.

그가 처마 앞쪽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번장옥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틈을 타서 면사포 한쪽을 뒤에서 살짝 들어 올리고 몰래 내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그냥 지나쳤다가 되돌아왔다.

약간 놀란 기색이었다.

그녀가 못생기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장을 한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반쯤 가려진 붉은 면사포 아래, 살구씨 모양의 눈이 그를 바라보며 안개 같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뺨에는 연지가 살짝 발려 있었는데 기술이 좀 서툴렀지만 그렇다고 미모를 해치지는 않았다.

입술에 바른 연지는 평소의 창백한 입술과 달리 눈처럼 흰 뺨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한눈에 봐도 눈이 부실 만큼 고왔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순간 굳더니, 지금 자신의 혼례 자리라는 것을 뒤늦게 떠올린 듯 도둑고양이처럼 황급히 면사포를 내리고 얌전히 제자리에 섰다.

빼어난 미인이기는 했다.

하지만 하는 행동은… 언제나 이렇게 묘하게 어울리지 않았다.

사정의 마음속에 소란스러운 손님들 때문에 생겼던 짜증이 어느새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어쩌면 이 요란한 혼례가 그렇게까지 따분하고 번거로운 일만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는 목발을 짚고 대청으로 들어섰다.

예식 아주머니가 꽃방울이 달린 붉은 비단 한쪽 끝을 사정에게, 다른 쪽을 번장옥에게 건넸다.

혼례를 주관하는 어른이 우렁차게 외쳤다.

“길시가 되었으니, 신랑 신부는 절을 올리시오!”

“첫 번 절, 천지신명께—”

면사포로 앞이 보이지 않는 번장옥은 조 아주머니의 손에 이끌려 바깥쪽을 향해 섰다.

그리고 사정과 함께 천지에 절을 올렸다.

“두 번 절, 조상께—”

두 사람 모두 부모님을 여읜 처지라, 높은 탁자 위에는 위패만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이 다시 위패를 향해 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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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절—”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허리를 굽히는 순간, 바람이 불어와 번장옥의 면사포가 거의 머리에서 날아갈 뻔했다.

그녀가 본능적으로 손을 뻗으려는데, 큰 손 하나가 먼저였다.

사정의 손이 면사포를 그녀의 머리 위로 꾹 눌러줬다.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지금 이 장면이 그다지 우아해 보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손님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봐봐, 신랑이 신부 얼굴 남한테 안 보여주려는 거래!”

면사포가 시야를 가리고 있어 번장옥은 그 순간 사정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놀림을 받는 게 민망해서 그가 언짢아 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혼례 완료—신방으로 안내하시오!”

이 외침과 함께, 두 사람은 마침내 붉은 비단을 쥔 채 미리 꾸며둔 신방으로 안내됐다.

이른바 신방은 꽤 소박했다.

문과 창문에 붉은 종이로 만든 쌍희(囍) 자가 붙어 있고, 침대 위에는 화사한 빛깔의 이불이 깔려 있었다.

예식 아주머니가 한차례 덕담을 늘어놓은 뒤 사정에게 번장옥의 면사포를 걷어 올리게 했다.

눈앞이 환해지며 방 안의 모습이 또렷해졌다.

아까 밖에서 면사포 밑으로 몰래 내다볼 때는 얼른 내려버려서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이제 한 발짝 거리에서 바라본 사정은 붉은 옷을 입으니 더더욱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오늘 이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가는 처자들이 여럿 마음을 빼앗길 것이 분명했다.

예식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봐요, 신부도 이렇게 곱고, 신랑 신부가 정말 천생연분이네요!”

주위 여자들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번장옥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사정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예식 아주머니가 다른 여자들과 함께 대추, 땅콩을 접시에서 집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뿌렸다.

“대추를 심어 귀한 자식 낳으소서.”

다 맞으면 좀 아팠다.

번장옥이 때맞춰 말했다.

“아주머니들, 감사해요. 그런데 신랑이 다치신 몸이라서, 오늘은 길하다는 의미만 담아 여기서 마치도록 해요.”

이 말은 또 새로운 놀림감이 됐다.

“봐봐, 벌써부터 신랑 감싸기 바쁘다!”

번장옥은 두꺼운 낯으로 놀림을 버텨냈다.

방 안에 가득했던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나서 사정에게 물었다.

“많이 아프세요?”

사정이 그녀를 바라봤다.

눈빛에 담긴 감정은 읽히지 않았다.

“아닙니다.”

안도한 번장옥이 이어 말했다.

“저는 손님들 접대하러 나가 있을게요. 방에서 쉬세요. 배고프시면 탁자 위에 있는 과자 드시고요.”

이 말은 원래 신랑이 신부에게 해야 할 말이었다.

번장옥의 입에서 나오니 어떻게 들어도 이상한 느낌이었다.

잠시 침묵 후 사정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상을 입은 몸으로 오래 버텨온 탓에 그의 표정에는 감출 수 없는 피로가 배어 있었다.

번장옥이 나가 손님들을 접대했다.

집에 어른이 없고 데릴사위를 들이는 혼례라 술잔을 억지로 권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들 실컷 먹고 하늘이 어두워지자 하나둘 작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잔치가 파하고 번장옥이 상과 의자를 정리하다 보니, 대문 옆 탁자 위에 누군가가 두고 간 비단 상자가 눈에 띄었다.

정리를 돕고 있던 조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이 선물은 누가 두고 간 거예요?”

조 아주머니도 의아한 표정이었다.

“잔치 시작 전에 선물 접수가 다 됐는데, 그 상자는 아까는 못 봤어. 나중에 몰래 두고 간 것 같은데.”

번장옥이 상자를 열었다.

안에 든 것을 보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녀는 즉시 상자를 조 아주머니가 방금 쓸어 모은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렸다.

상자 안의 흙인형이 산산조각 났다.

번장옥의 반응을 보고 깨진 남녀 흙인형을 알아본 조 아주머니의 얼굴빛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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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송가 집 방향을 향해 독하게 침을 뱉었다.

“이 배은망덕한 놈! 네가 어려울 때 누구보다 먼저 뒤돌아선 주제에, 혼례날에 이걸 보내서 속을 긁어 놓겠다는 거야?”

번장옥이 말했다.

“아주머니, 화내지 마세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 때문에 속 끓일 필요가 어디 있어요.”

딱히 흙인형이 나쁜 기억을 건드려서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그냥 짜증스러웠다.

그 흙인형은 번장옥이 일곱여덟 살 때 송연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가 침울해 보이자 선물로 줬던 것이었다.

세월이 지나며 번장옥은 부모님이 송연에게 적지 않은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제일 먼저 파혼을 서두른 것도 그였고, 번대와 노름꾼들한테 시달릴 때 문을 걸어 잠그고 외면한 것도 그였다.

그런데 이제 혼례날에 이 흙인형을 돌려보내다니, 무슨 뜻으로 하는 짓인가.

이 불쾌한 일 때문에 번장옥의 표정은 저녁이 되어 온 가족이 저녁상을 마주할 때까지도 내내 굳어 있었다.

사정은 다치신 몸이라 자리를 옮기기 불편하니, 그녀가 밥상을 방으로 들고 갔다.

“다치신 몸이니 소화하기 좋은 것들로 골라봤어요.”

사정은 그녀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눈치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눈을 반쯤 내리깔고 담담하게 감사합니다, 라고 했다.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나니 거의 해시(亥時)였다.

조 아주머니가 자고 있는 장녕을 옆집으로 데려가려는데 번장옥이 바로 말했다.

“안 그래도 되니까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장녕은 항상 저랑 같이 잤어요. 안 그러면 악몽을 꾸고 밤새 울거든요.”

조 아주머니가 말했다.

“평소에는 그래도 되지. 근데 오늘 혼례 첫날 밤에 신랑 신부가 같은 방에 있어야 길하지 않겠니. 안 그러면 징조가 안 좋아.”

그 말과 함께 번장옥이 더 말할 틈도 없이 장녕을 안고 나가버렸다.

낮 동안 그렇게 떠들썩하던 마당이 이제는 소름 끼칠 만큼 고요했다.

처마 아래 붉은 등이 높이 걸려 눈 내리는 밤을 흐릿한 노란빛으로 물들였다.

번장옥은 문간에 쭈그리고 앉아 무릎을 끌어안은 채, 밤하늘에서 굵게 내리는 눈송이를 한참 바라보다 일어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가짜 혼인이니 당연히 같은 방에서 잘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집 안의 솜이불이 전부 신방에 있었다.

원래 그녀가 쓰던 방이었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혼자 자기 무서운 장녕이 같이 들어와 둘이 지내다가 지금은 신방이 된 것이었다.

붙어 있는 옆방에는 아직 이불을 갖다 놓지 않았다.

십 년 넘게 자던 방이라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제야 사정이 옷을 갈아입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겉옷을 벗었고, 속옷도 반쯤 벗어 팔꿈치까지 내려온 채 허리까지 드러나 있었다.

아름다운 몸이었다.

붕대 사이로 드러난 살갗은 촛불 아래 곱게 빛나는 구릿 빛이었고, 근육의 선이 또렷했다.

갑자기 문이 열리자 그가 고개를 약간 돌렸다.

옥을 다듬어놓은 듯한 그 얼굴이 이 순간 차가우면서도 묘하게 속세를 벗어난 듯한, 그러면서도 어딘가 홀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번장옥은 몇 번 숨을 들이쉬며 멍하니 서 있었다.

그가 긴 눈썹을 불쾌하게 찌푸리며 반쯤 벗었던 속옷을 다시 끌어올리고 물었다.

“무슨 일이오?”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가 지금 양갓집 규수 외모를 탐하는 불한당 짓을 한 건가?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 오르며 황급히 뒤를 돌았다.

“죄송해요, 노크하는 걸 잊었어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요. 이불 가지러 온 거예요.”

“가져가시오.”

등 뒤에서 차갑고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번장옥은 최대한 곁눈질하지 않으려 애쓰며 장롱에서 솜이불 두 채를 꺼냈다.

이불을 끌어안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방을 나섰다.

모퉁이를 돌고 나서야 비로소 후~ 하고 숨을 내쉬었다.

정말 창피했다!

오해만 안 사면 다행이었다.

사정의 예민한 귀는 그 작은 한숨 소리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녀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붕대를 풀고 깊고 심한 상처에 약을 발랐다.

매의 발에 묶어 보내온 약이었다

— 구하기 힘들기로 이름난 금창(金瘡) 분말이었다.

약효가 몹시 강했다.

분말이 상처에 닿는 순간, 칼날이 찌르는 듯한 고통이 온몸을 관통했다.

몸의 모든 근육과 힘줄이 당겨지는 것 같았다.

팔뚝의 혈관이 불끈 솟아오르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배어 났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입 안에서 옅은 피 맛이 돌았다.

피가 흘러 방 안을 더럽히지 않도록 그는 방 안 나무 의자에 앉은 채, 꽉 쥔 두 주먹을 조용히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땀과 피, 먼지가 뒤섞인 물방울이 그의 굳은 등줄기를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치료라기 보다는 차라리 혹독한 형벌에 가까운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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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한계를 넘는 그 고통 속에서, 눈꺼풀 위로 땀방울이 맺혀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촛불 빛을 머금은 눈동자 안에는 어둡고 깊은 감정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 상처들과, 살점에 새겨진 이 타는 듯한 고통 — 반드시 그대로 돌려줄 것이었다.

그때 아까 사라졌던 바깥의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사정이 눈을 들었다.

눈빛에는 아직 가라앉지 않은 날카로운 기운이 가득했다.

시선이 문 쪽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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