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다음 날 아침, 번장옥은 장령을 조 아주머니 집에 맡기고, 품속에 삼백여 문과 은비녀 하나를 넣어 들고 집을 나섰다.
그 비녀는 그녀가 계례를 치르던 해에 부모가 사준 것으로, 무려 은 두 냥이 넘게 들었던 물건이었다.
이 비녀를 전당포에 맡기면 돼지를 살 돈은 마련할 수 있을 터였다.
전당포에 들어갔지만, 점포 주인은 그녀의 비녀를 들고 한참이나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보더니 손가락 세 개를 내밀었다.
“삼백 문.”

번장옥은 숨이 턱 막힐 뻔했다.
“이 비녀 순은이에요. 고작 삼백 문이라고요?”
점포 주인이 말했다.
“은이긴 해도 무게가 가볍고, 모양도 유행이 지났지. 집안 사정이 어려운 건 알겠는데… 그래, 내가 오백문까지는 쳐 주겠네. 그 이상은 안 돼.”
번장옥이 단호하게 말했다.
“한 냥이요. 한 푼이라도 덜이면 안 맡겨요.”
점포 주인은 비녀를 탁자 위에 툭 던지며 말했다.
“그럼 가져가시오.”
번장옥은 이 비녀를 맡겨야 돼지를 살 수 있었기에 기대하고 왔지만, 이렇게까지 값을 깎아버릴 줄은 몰랐다.
더 말 섞지 않고 비녀를 챙겨 밖으로 나섰다.
점포 주인도 이 아가씨가 이렇게 고집이 셀 줄은 몰랐던지 급히 불러 세웠다.
“어이… 돌아오시오, 돌아와! 한 냥이면 한 냥으로 하지. 내가 손해 보고 사주는 셈 치고… 아침 첫 장사니 그냥 해주겠네.”
전당포를 나올 때, 번장옥의 손에는 은 한 냥이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장에 나가기 전에 먼저 숙육(熟肉) 값을 알아보려고, 익힌 고기를 파는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마침 장날이라 아직 이른 시각이었는데도 시장은 이미 북적이고 있었다.
시골에서 온 농가 사람들은 산나물을 들고 나와 팔고, 그 돈으로 다시 설맞이 물건을 사서 돌아가고 있었다.
번장옥이 한 바퀴 돌아보니, 숙육을 파는 가게들은 대부분 구운 닭이나 거위 같은 것을 주로 팔고 있었고, 돼지고기 쪽은 돼지머리 고기와 귀가 가장 많이 팔렸으며, 내장은 가장 적게 팔리고 있었다.
뚱뚱한 아주머니 하나가 번장옥이 계속 가게 앞 음식을 살피고 있는 것을 보고 외쳤다.
“아가씨, 구운 닭 살래요?”
번장옥이 물었다.
“이 돼지머리 고기는 얼마예요?”
아주머니가 말했다.
“안목이 있네. 이건 어젯밤에 막 삶은 거야, 밤새 푹 삶아서 아주 향이 좋아. 한 냥에 오 문이야, 얼마나 줄까?”
그러니까 한 근에 오십 문이라는 뜻이었다.
다만 상인들은 대개 값을 일부러 높게 불러 흥정을 남겨두는 법이었다.
번장옥은 떠보려고 일부러 말했다.
“좀 비싸네요…”
아주머니가 곧바로 말했다.
“설 앞두고 안 오른 게 어디 있어? 여기 값이 제일 싼 편이야. 진짜 살 생각이면 두 냥에 아홉 문으로 해줄게.”
번장옥은 대개 이 가격으로 팔리는 것이라 짐작했다.
계산해보니 돼지머리 고기는 한 근에 약 사십오문쯤이었다.
그녀는 같은 방식으로 여러 가게를 돌며 돼지귀와 내장 값도 알아보았다.
돼지귀가 가장 비싸서 한 근에 육십문이었는데, 한 마리에 귀는 두 개 뿐이니 값이 높은 게 당연했다.
반대로 내장은 값이 훨씬 떨어져 한 근에 이십 문 정도였다.
원래 내장은 먹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부자들은 꺼려했고, 가난한 사람들은 제대로 손질하지 못해 냄새가 심했다.
정육점에서도 잘 팔지 않는 물건이라, 진짜로 사려면 십 문도 안 들여 한 통을 들고 갈 수 있었다.
번장옥은 대략 감을 잡고 육 거리에서 나와 정육 시장으로 향했다.
그 옆에는 가축을 파는 와시장이 있었다.
정육 시장은 훨씬 더 붐볐다.
번장옥 집도 이곳에 자리가 좋은 돼지고기 가게를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가게들은 다 문을 열고 도마와 갈고리에 고기를 가득 걸어두고 있는 반면,
그녀의 가게만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앞자리도 이미 다른 장사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번장옥은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마음이 착잡해졌다.
곧 다시 문을 열게 될 거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녀는 돈을 챙겨 가축 시장으로 향했다.
이쪽은 훨씬 더 어수선했다.
돼지, 양, 소, 말이 뒤섞여 있었고, 발을 잘못 디디면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배설물을 밟기 일쑤였다.
냄새도 좋지 않았다.
상인들은 대부분 짧은 옷을 입은 중년 남자들이었고, 옆에는 돼지나 양이 묶여 있었다.
값을 흥정할 때는 업계 말로 주고받아 외지인은 알아듣기 어려웠다.
번장옥처럼 젊고 고운 여자가 이곳에 나타나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상인들이 무엇을 사러 왔느냐고 불러세웠지만, 번장옥은 모두 무시했다.
예전에 아버지를 따라 와본 경험으로, 이런 상인들에게 사면 좋은 값을 받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장날이면 시골에서 직접 돼지를 몰고 나와 파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런 경우 중간 상인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한참 둘러봐도 마음에 드는 돼지는 없었다.
아버지가 늘 말하던 기준이 있었다.
엉덩이가 둥글고 꼬리가 짧고 굵은 돼지를 골라야 기름이 좋고 고기가 좋다는 것이었다.
다른 곳을 보려던 순간, 구석에서 한 노인을 발견했다.
마르고 검게 그을린 노인이었고, 발치에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돼지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앞다리와 목에 밧줄이 묶여 있었고, 팔리기를 기다리는 듯했지만 몸이 더러워서인지 아직 아무도 값을 묻지 않았다.
노인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간절하게 바라보면서도 선뜻 말을 걸지 못하고 있었다.
번장옥이 다가가 물었다.
“어르신, 이 돼지 얼마예요?”
드디어 손님이 붙자 노인은 긴장한 듯 말했다.
“집에서 이걸 팔아야 설을 날 수 있어서… 돼지 장수들은 시골에서 열 문에 사 간다오. 그래서 내가 직접 몰고 나왔지. 아가씨가 사면 열두 문에 주겠소.”
번장옥은 깜짝 놀랐다.
중간 상인들이 이미 열여덟, 열아홉 문까지 부르고, 깎아도 열다섯 문이 한계였는데, 이 가격은 말 그대로 횡재였다.
지금 사람이 적은 시간이라 아직 안 팔린 것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말했다.
“제가 살게요!”
저울에 달아보니 무려 아흔 근이었다.
번장옥은 은 한 냥에 팔십 문을 더 얹어 주고 돼지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지금 고기를 잡아 팔면 이미 장이 한물 지나 값도 떨어질 터였다.
차라리 오늘 준비해 두었다가 내일 아침에 잡는 게 나았다.

돼지를 몰고 길을 걷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하지만 번장옥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는 사람이 말을 걸면 오히려 장사를 미리 알렸다.
“내일 잡아서 가게에 내놓을 돼지예요. 와서 좀 사가세요.”
마침 예전에 아버지 가게에 고기를 사가던 주점 주방장이 재료를 사러 나오다 그녀를 만났고, 돼지를 보더니 바로 이십 근을 예약하며 이백 문을 계약금으로 건넸다.
번장옥은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골목이 좁아 돼지를 몰며 내는 소리와 돼지 울음이 골목 전체에 울렸다.
그때 하얀 털빛의 맹금 하나가 집 쪽에서 날아올라 하늘로 사라졌다.

번장옥은 고개를 들어 잠시 바라보았다.
겨울에는 눈 덮인 들판에서 매나 독수리가 닭이나 토끼를 노리긴 하지만, 이 마을에는 그런 것도 없는데 왜 이 근처에 있는지 이상했다.
골목 양옆은 오래된 집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었고, 모두 이층 구조였다.
그중 골목 끝 한 집 다락방에서는, 남자가 창가 침상에 반쯤 기대 앉아 있었다.
낡은 회색 옷을 걸쳤지만 기품은 숨길 수 없었고, 침상 아래에는 꺼진 숯불이 놓여 있었다.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찬바람이 들어와 그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그 얼굴은 바로 번장옥이 구해온 그 남자였다.
골목의 소란에 그는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좁은 골목을 따라 눈이 녹은 길 위로, 웃음을 띤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어젯밤 보았던 살구색 저고리를 입고, 마치 어두운 그림 속에 갑자기 밝혀진 한 점의 따뜻한 빛 같았다.
… 그런데 그녀가 몰고 오는 건, 돼지였다.
돼지 울음이 다시 들려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남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는 지금까지 책 읽는 규수도, 장수 집안의 여인도 많이 봤지만, 돼지를 몰고 다니는 여자는 처음이었다.
여자는 이미 지나가 창밖에서 보이지 않았고, 대신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이 큰 돼지는 어디서 난 거야?”
번장옥의 밝은 목소리가 답했다.
“당연히 사온 거지!”
밖이 더 시끄러워졌고, 이웃들도 돼지를 몰고 들어오는 것을 도와주는 듯했다.
남자는 더 듣지 않고 눈을 감았다.
상처를 빨리 회복해야 했다.
번장옥은 그런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돼지를 집 뒤 우리에 넣고 문을 잠갔다.
어제 받은 내장을 들고 우물가로 가 깨끗이 씻었다.
돼지고기는 당일 잡아야 신선했다.
그 돼지는 내일 아침 잡고, 오늘은 내장을 먼저 삶아 둘 생각이었다.
내장은 따로 팔지 않고, 고기를 사는 사람에게 덤으로 줄 계획이었다.
한 근을 사면 한 냥을 덤으로.
번장옥은 시장을 돌아본 결과를 떠올렸다.
숙육 가게가 많은 만큼 경쟁도 치열했다.
갑자기 숙육을 팔아도 사람들이 쉽게 돈을 쓰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장을 미끼로 손님을 끌기로 했다.
돈 받고 팔면 안 사도, 공짜라면 다들 받아갈 테니까.
그걸 먹어보면 맛을 알게 되고, 나중에 다시 찾게 될 것이다.
번장옥은 내장을 씻고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불을 지폈다.
물에 향신료와 생강, 마늘을 넣어 끓이며 육수를 만들었다.
그녀의 집은 조미료가 잘 갖춰져 있었다.
어머니가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번장옥은 어머니에게서 여러 요리를 배웠지만, 유독 이 간장 조림만큼은 잘했다.
칼질도 호쾌했다.
도마를 내리치는 소리는 도둑도 놀라 달아날 정도였다.
한 시간쯤 지나자, 번씨 집 부엌에서 진한 향이 퍼졌다.
이웃들은 코를 벌름거리며 누가 이렇게 맛있는 고기를 삶는지 궁금해했다.
향기는 위로 올라가 옆집 다락까지 퍼졌다.
남자는 눈을 감은 채 침을 삼켰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적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