逐玉 축옥 원작소설 제2장

제 2장

촛불이 일렁이며 허름하고 낡은 방 안에 따뜻한 빛을 얹고 있었다.

침상 위의 사람은 조용히 누워 있었다.

피와 때를 닦아낸 그 얼굴은 창백하면서도 수려했고, 놀라울 만큼 잘생겼다.

보아하니 아직 꽤 젊었다.

몸은 마른 편이었지만 결코 왜소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지금은 다시 잠든 상태였다.

긴 속눈썹이 눈꺼풀 위를 덮고 있어 등불 아래 부채꼴 그림자를 만들었고,

콧날은 높고 반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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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얇은 입술은 잠든 와중에도 꼭 다물려 있어, 보기만 해도 꽤 고집스러운 성정일 것 같았다.

이런 얼굴에 온몸 가득 상처를 입은 모습이 더해지니, 마치 혹독한 겨울 서리에 가지가 꺾였어도 끝끝내 꼿꼿함을 잃지 않는 소나무 같기도 했고,

돌껍질에 싸인 채 여기저기 쪼여 상처 입은 옥덩이 같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불이 눈을 비춘 탓인지, 아니면 너무 오래 시선을 받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 남자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먹처럼 새까만 두 눈이었다.

그런데 그 안엔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살짝 위로 올라간 눈꼬리에는 타고난 냉랭함마저 서려 있었다.

번장옥은 몰래 훔쳐보다 들킨 사람 특유의 어색함은 전혀 없이, 담담하게 물었다.

“깨어났어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번장옥은 그의 입술이 너무 말라 갈라진 걸 보고, 상처가 심해 말을 하기 싫은 줄로 여겼다.

“물 좀 마실래요?”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날 구했소?”

목소리는 거칠게 쉰 모래알이 깨진 징 위를 긁는 듯했다.

그의 눈처럼 맑고 깨끗한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번장옥은 탁자로 가서 물 한 잔을 따라 건넸다.

“눈밭에 쓰러져 있는 걸 보고 제가 업어 왔어요. 근데 진짜로 당신을 귀문관에서 끌어낸 건 조 아저씨예요.”

그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지금도 그분 집에 있는 거예요. 예전엔 의원 노릇을 하셨거든요. 물론 수의사였지만.”

남자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가 빠진 거친 사기잔을 받아든 그의 손등에는 온갖 찰과상이 덮여 있었고, 성한 피부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물을 몇 모금 넘기고 나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심하게 기침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며 드러난 턱선은 더욱 창백해 보였다.

번장옥이 말했다.

“천천히 마셔요. 보아하니 여기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성함도 사는 곳도 몰라 관아엔 안 알렸어요. 혹시 호차구 쪽에서 산적을 만난 건가요?”

남자는 기침을 겨우 멈추고 눈을 내리깔았다.

얼굴 절반이 등불이 닿지 않는 그늘 속으로 잠겼다.

“성은 언, 이름은 정이오. 북쪽에 전쟁이 나서, 숭주에서 피난 왔소.”

임안진은 계주부 아래 있는 작은 마을이라, 번장옥은 자라면서 계주 밖을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도 밝지 않았다.

다만 가을 무렵 관아에서 군량을 거둔 적이 있었으니, 아마 전쟁 때문이겠거니 짐작할 뿐이었다.

그녀는 눈꺼풀이 한 번 뜨끔했다.

전쟁을 피해 혼자 도망쳐 왔다면, 집안은 아마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족은… 남아 있어요?”

그 말을 듣자 남자는 거친 사기잔을 쥔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 손가락 마디가 허옇게 질렸다.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쉰 목소리로 몇 글자만 겨우 뱉었다.

“없소.”

역시 집안이 망한 것이었다.

번장옥은 얼마 전 부모를 잃은 아픔을 막 겪은 참이었으니, 지금 그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입술을 살짝 다물고 말했다.

“미안해요.”

남자는 “괜찮소”라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곧바로 다시 기침을 터뜨렸다.

마치 목 안에 피가 걸린 것처럼, 기침은 점점 심해졌다.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놓쳐 바닥에 떨어뜨렸고, 정말로 폐까지 토해낼 기세로 쿨럭였다.

번장옥은 순간 어쩔 줄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는 급히 조 아주머니를 불렀고, 동시에 다가가 그의 등을 두드리며 숨을 돌리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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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깨에서 가슴까지 칼과 창에 찔린 상처가 많았다.

붕대로 감겨 있긴 했지만, 상처를 압박하지 않으려고 속옷도 느슨하게만 걸친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숨이 끊어질 듯 기침을 해대니, 옷깃이 벌어지면서 붕대 감긴 허리와 배의 근육이 등불 아래 또렷이 드러났다.

하지만 기침이 너무 심해 상처가 다시 벌어진 모양이었다.

붕대 위로 피가 조금씩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번장옥은 더 크게 외쳤다.

“아주머니! 빨리 조 아저씨 좀 불러와요!”

밖에서 조 아주머니가 대답하고는 황급히 남편을 찾으러 나갔다.

남자는 계속 숨이 끊어질 듯 기침했다.

원래도 창백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더니, 끝내 침상 가장자리에 몸을 숙이고 검붉은 피를 한 모금 토해냈다.

번장옥은 깜짝 놀랐다.

그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질까 봐 서둘러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괜찮아요?”

남자의 이마엔 이미 식은땀이 빽빽했다.

목과 가슴도 땀으로 흠뻑 젖어, 마치 물에서 건져 올린 사람 같았다.

온몸에 짙은 피 냄새가 풍겼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이마에 들러붙어 있어 초라하면서도 처절해 보였다.

“좀 나아졌소… 고맙소.”

그는 손등으로 입가의 피를 닦고, 기둥에 반쯤 기대 누워 숨을 몰아쉬었다.

드러난 목덜미는 어쩐지 처절했다.

마치 죽기 직전 더는 발버둥치지 않기로 한 짐승 같았다.

하지만 지금 상태는, 그가 말한 것처럼 결코 “좀 나아진” 게 아니었다.

번장옥은 남자를 보며, 처음 눈밭에서 그를 주웠을 때를 떠올렸다.

반쯤 의식을 잃은 와중에도 억지로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빛은, 꼭 죽어가는 들늑대 같았다.

조 목수가 밖에서 돌아왔을 때, 남자는 이미 기력을 다해 다시 까무룩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숨은 가늘고 희미했다.

번장옥은 흉년 든 농부 같은 얼굴로 문간에 쭈그리고 앉아 생각했다.

이 사람이 죽으면, 자기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나?

좋은 일도 끝까지 하는 셈으로 관 하나 사서 묻어줘야 하나, 아니면 대충 구덩이 하나 파서 묻어버려야 하나?

주머니 안의 동전 몇 닢을 만져보니, 후자가 나을 것 같았다.

자기랑 동생도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구덩이 하나 파서 묻어주는 것만 해도 충분히 할 만큼 한 셈이었다.

한참 뒤에야 조 목수는 무거운 얼굴로 방에서 나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먼저 대청으로 가서 찬 차 한 잔을 벌컥 마셨다.

번장옥은 그가 저런 표정인 걸 보고, 사람은 이미 가망이 없구나 싶었다.

“아저씨,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정말 못 살리면 그 사람 팔자죠 뭐. 숨이 끊어지면 제가 산에 업고 가서 풍수 좀 괜찮은 데다 묻을게요.”

조 목수는 차에 목이 막혀 한참 기침하다가 겨우 말을 이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사람 멀쩡히 살아 있구먼!”

번장옥은 눈을 크게 뜨고 멍해졌다가, 곧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었다.

“아까 피까지 토하고, 아저씨도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보여서, 전 정말 가망 없는 줄 알았어요.”

조 목수가 말했다.

“그 젊은이는 원체 바탕이 좋아. 아까 그 고인 피를 토해낸 덕에 목숨은 붙었어. 다만 목숨만 겨우 건진 거지, 앞으로 완전히 회복할지는 모르지. 세심하게 보살펴야 하고, 그 뒤는 그 사람 운에 달렸어.”

그 말인즉, 자칫하면 평생 힘 못 쓰는 몸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조 목수가 물었다.

“어디 사람인지, 집안에 남은 식구는 있는지 아느냐?”

번장옥은 그 남자에게서 들은 사정을 떠올리며, 다시 흉년 난 농부 같은 얼굴로 문턱에 주저앉았다.

“북쪽에서 피난 왔다고 했어요. 가족은 다 죽었다고요. 여기까지 도망쳐 와서는 또 산적까지 만났고요. 지금은 갈 데도 없는 것 같아요.”

조 목수 부부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입을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 했다.

목숨만 잠깐 살려주는 거야 그렇다 쳐도, 병약한 사람 하나를 계속 먹여 살리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저정도 중상이라면 약값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사람 하나 늘면 그만큼 밥 한 그릇도 더 들어가야 했다.

한참 침묵이 흐른 뒤, 조 목수가 물었다.

“넌 어쩔 생각이냐?”

번장옥은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바닥에 몇 번 빙빙 그리다가 말했다.

“눈밭에서 업어온 사람을 이제 와 내쫓을 수는 없잖아요.”

조 아주머니는 다급하게 말했다.

“너도 형편 어려운데! 부모님도 안 계시고, 영랑이는 몸도 약해서 늘 약을 먹여야 하고… 거기에 이런 사람까지 먹여 살리면 너 어떡하니?”

번장옥도 자기가 큰 짐 하나를 주워 온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일단 상처부터 낫게 해야죠. 좀 나아지면,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그때 생각해보면 되고요.”

방 안에서는 조 목수에게 침 한 차례 맞은 그 남자가 막 정신을 조금 되찾고 있었다.

그리고 문밖에서 오가는 이 대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있었다.

흑옥처럼 검은 눈이 조용히 굴러 문 쪽을 향했다.

어둑해진 하늘에 다시 큰 눈이 쏟아지고 있었고, 방 안의 촛불이 따뜻한 빛을 비추어, 바깥도 덜 차가워 보였다.

소녀는 살구빛 낡은 솜저고리를 입고 문턱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팔꿈치를 무릎에 얹고, 한 손으로는 뺨을 괴고, 다른 손으로는 작은 나뭇가지를 들어 바닥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예쁜 눈썹이 가볍게 모여 있는 걸 보니, 무척 곤란한 결정을 내린 듯했다.

노부부는 옆에서 한숨만 쉬고 있었다.

남자는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거두고, 다시 눈을 감았다.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기침을 억지로 눌러 삼켰다.

그날 밤, 번장옥은 동생이 잠든 뒤에야 들보 위에 숨겨둔 나무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열자 안에는 관인이 찍힌 토지 문서 몇 장과 동전 몇 닢이 들어 있었다.

문서들은 부모가 죽은 뒤 남긴 것이었고, 동전은 번장옥이 돼지를 잡으며 스스로 번 돈이었다.

원래 그녀 집안 형편이 아주 나쁜 편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쪼들리게 된 건, 지난해 말 그녀 아버지가 큰돈을 들여 돼지우리를 마련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진에서 이름난 도축업자였다.

늘 돼지장수에게서 돼지를 사오는 것보다, 차라리 시골에 직접 돼지우리를 만들어 사람을 써서 키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우리를 짓기도 전에, 부부가 함께 변을 당하고 만 것이다.

장례를 치르느라 집안의 돈은 거의 다 나갔다.

수입도 끊겼다.

번장옥은 어쩔 수 없이 밖에 나가 돼지를 잡으며 생계를 이어야 했다.

급하면 밭 몇 마지기를 팔 수도 있지 않느냐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나라 법으로는, 부모가 살아생전 남긴 증빙 서류가 없는 한 딸은 부모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었다.

아들이 없으면 재산은 부모의 형제에게 돌아갔다.

번장옥은 여자라 부모가 남긴 집이나 땅을 자기 이름으로 넘길 수도 없었고, 저당 잡히거나 팔아서 돈으로 바꿀 수도 없었다.

큰아버지는 도박꾼이었다.

도박빚을 잔뜩 진 탓에, 번장옥 집의 집과 땅을 가져다가 빚을 갚으려 들었다.

틈만 나면 찾아와 문서 내놓으라고 난리를 쳤다.

번장옥은 당연히 줄 생각이 없었다.

그루, 풀 한 포기까지 다 정이 들었다.

그 집은 부모와 함께 십수 년을 살아온 곳이었다.

거기 있는 나무 한 그 집마저 빼앗기면, 어린 동생을 데리고 길바닥에 나앉으란 말인가?

혹시 어린 동생이 속아 말이라도 흘릴까 싶어, 번장옥은 문서를 숨겨둔 장소조차 동생에겐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상자 속 동전을 다 쏟아 놓고 하나하나 세어보았다.

모두 합해 삼백칠십 문.

그동안 돼지를 잡고, 생활비를 떼고 겨우 모은 돈이었다.

사실, 그 낯선 남자를 거두지 않았어도 집안 형편은 이미 벼랑 끝이었다.

남의 집 돼지를 잡아 품삯을 받는 건 오래 갈 일이 아니었다.

섣달엔 설 준비 때문에 돼지를 잡는 집이 많아 일거리가 있지만, 설이 지나고 나면 거의 일이 끊긴다.

번장옥은 어떻게든 집안의 돼지고기 가게를 다시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장부를 굴렸다.

섣달엔 산 돼지 값이 한 근에 십오 문이니, 팔십 근짜리 돼지 한 마리를 사려면 본전만 해도 일관 이백 문이 든다.

잡고 나면 대략 육십 근쯤 남는다.

그걸 전부 생고기 값으로 한 근 서른 문에 팔면, 한 마리에 육백 문 정도는 순이익이 남는다.

게다가 돼지머리와 내장을 삶아 간장 양념으로 조리해 팔면 값은 더 올라간다.

명절에는 집집마다 손님을 치러야 하지만, 평범한 집은 양념이 넉넉하지 않아 제대로 된 요리를 하기 힘들다.

그래서 거리에서 익힌 음식, 특히 장조림 고기나 족편 같은 걸 사다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계절엔 그런 음식이 꽤 잘 팔린다.

생각은 좋았다.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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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녀에겐 돼지 한 마리 살 돈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번장옥은 길게 한숨을 쉬고, 동전은 소매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토지 문서만 다시 상자에 넣어 들보 위에 올려두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선은—

돼지 한 마리를 살 돈부터 마련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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