逐玉 축옥 원작소설 제4장

제 4장

번장옥은 소쿠리 하나를 찾아 향이 진하게 밴 돼지 내장을 건져 올려 물기를 뺐다.

양념 향과 고기 향이 어우러진 정도가 딱 알맞았고, 졸아든 빛깔도 무척 먹음직스러웠다.

낮에 숙육 가게들에서 보았던 것들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장녕은 부엌 아궁이 쪽으로 몸을 쭉 빼며 애타게 들여다보다가, 삶은 것이 전부 내장뿐인 걸 보고 조금 실망했다.

“돼지귀는 없어…”

장녕은 돼지귀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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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장옥은 젓가락으로 돼지 대창과 돼지 위를 가볍게 콕 찔러보았다.

힘 하나 들이지 않아도 구멍이 날 만큼 푹 무르고 간이 잘 배어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오늘 밤은 곱창 국수 먹고, 내일은 돼지귀 삶아줄게.”

그러자 장녕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아궁이 불이 한창 좋을 때를 놓치지 않고, 번장옥은 양념국물을 먼저 덜어낸 뒤 솥을 깨끗이 씻고 다시 물을 올렸다.

그리고 다섯 사람 몫의 면을 넉넉히 삶기 시작했다.

그녀는 장녕에게 일렀다.

“조 아주머니 댁에 가서, 오늘 밤엔 야식 따로 하지 마시고 이따가 같이 곱창 국수 드시라고 말해.”

장녕은 얌전히 “네” 하고 대답한 뒤, 종종걸음으로 옆집에 말을 전하러 갔다.

국수 끓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번장옥은 미리 큰 사발 넷과 작은 사발 하나에 양념을 담아두고, 더 향긋하게 하려고 미리 만들어둔 돼지기름도 한 숟갈씩 퍼 넣었다.

그 위에 펄펄 끓는 국숫물을 부으니, 돼지기름과 양념이 사발 안에서 녹아 내리며 향이 단번에 퍼졌다.

번장옥은 국수를 아주 간단히 만들었다.

면을 건져 담고, 잘게 썬 부드러운 곱창을 한 층 올린 뒤, 마지막으로 파를 조금 흩뿌리면 끝이었다.

어머니가 국수를 끓였다면 따로 육수를 한 솥 푹 고아 국숫물 대신 부었을 것이다.

그러면 맛이 정말 남달랐을 터였다.

번장옥은 동생 몫은 상 위에 올려 먼저 먹게 해두고, 나머지 큰 사발 세 개는 직접 들고 옆집으로 갔다.

다락과 아래층을 잇는 건 나무 계단이었다.

층계판 위로 단단하면서도 가벼운 발소리가 들리자, 사정은 눈을 떴다.

잠시 뒤 문밖에서 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자고 있어요?”

사정이 말했다.

“문은 잠그지 않았소.”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 있었지만, 어제보다는 한결 나아져 있었다.

번장옥은 팔꿈치로 문을 밀어 열고, 한 손에는 등잔을 들고 다른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면 한 그릇을 든 채 들어왔다.

“방금 아주머니께 들었는데요, 오늘 아침 큰 매 한 마리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는 아래층 방 창문으로 곧장 들이 박았대요. 창문까지 깨졌다는데, 그런 괴상한 일이 다 있네요.”

사정은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해동청이 그렇게까지 멍청할 줄은 몰랐다.

휘파람 소리를 듣자마자 냅다 곤두박질쳐 내리꽂을 줄이야.

번장옥은 슬쩍 그의 얼굴빛을 살폈다.

여전히 창백하긴 했지만, 사람 전체의 기색은 어제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그녀는 이미 상대의 과묵한 성정을 어느 정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등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 맹금이 사람을 해친 건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아래층 방 창문은 아저씨가 한가해지시면 다시 고치셔야겠네요. 지금 지내는 이 다락방은 좀 좁긴 해도, 그래도 조용하잖아요.”

사정은 그제야 가볍게 “음” 하고 대답했다.

번장옥은 국수를 내밀었다.

“국수 한 그릇 끓였어요. 그냥 대충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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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은 이미 향을 맡고 있었다.

면 위에 수북이 얹힌, 자신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음식에서 아까 골목 전체를 채웠던 바로 그 고기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냄새를 맡자 뱃속 허기가 더욱 심하게 들끓었다.

며칠째 사람을 질리게 할 만큼 쓴 약물과 흰죽만 먹어왔으니, 지금 눈앞의 이 국수 한 그릇은 진수성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그릇을 받아 젓가락을 들었다.

면은 미끄럽고 국물은 깊고 진했다.

대단한 밀가루를 쓴 것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가 여태 먹어본 어떤 면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위에 올려진 고기는 부드럽고 쫄깃했고, 한입 깨물면 향이 짙게 퍼졌다.

그는 스스로도 산해진미를 적잖이 먹어봤다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이게 무슨 부위인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사정이 물었다.

“이건 무엇이오?”

번장옥은 막 자기 몫의 곱창 국수를 먹으러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그가 묻자 답했다.

“곱창이요.”

사정은 면을 집어 들던 손을 멈췄다.

그 ‘창’ 자를 듣는 순간, 마음속에 벌써 좋지 않은 예감이 스쳤다.

번장옥은 그가 곱창이 뭔지 잘 모르는 듯 보여 더 직접적으로 말했다.

“돼지 창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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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번장옥은 돼지 내장을 싫어하는 사람을 본 적은 있었지만, 방금까지 그가 먹는 표정만 보면 맛없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이 저렇게 나빠지니,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의아하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오.”

그 대답은 조금 힘겹게 나왔다.

사정은 내색하지 않고 몇 차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에야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겨우 눌러 가라앉혔다.

번장옥은 아직도 자기 곱창 국수가 마음에 걸렸다.

더 늦으면 면이 불어버릴 것 같아 말했다.

“그럼 저 먼저 갈게요. 그릇은 다 드시고 옆 찬장 위에 올려두세요. 좀 있다가 아주머니가 올라와서 가져가실 거예요.”

문이 가볍게 닫히는 소리가 났고, 이어 그녀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정은 자기 손에 든 그릇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계속 먹어야 할지 한참 망설였다.

그는 귀하게만 자란 사람이 아니었다.

예전 군을 이끌고 험한 길을 다닐 때는 나무껍질도 뜯어먹고 풀뿌리도 씹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유독 짐승의 창자 만큼은 먹어본 적이 없었다.

돼지 창자라니.

그건 돼지 똥이 들어 있는 곳이 아닌가?

생각만 해도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온몸에 상처를 입은 자기 처지를 떠올리면, 이 국수 한 그릇은 며칠 사이 그에게 들어온 음식 중 가장 기름지고 영양 있는 것이었다.

사정은 한참을 갈등하다가, 끝내 다시 젓가락을 들고 면을 집어 올렸다.

움직임은 다소 굳어 있었지만, 결국 입가로 가져갔다.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하면, 먼저 그 마음을 괴롭히고 뼈와 근육을 단련시킨다고 했으니…

그런데.

의외로 꽤 맛있었다.

그날 밤, 원래 좀처럼 꿈을 꾸지 않던 사정은 기이하게도 자기를 구해준 그 여자를 꿈에서 보았다.

꿈속에서 그녀는 기분 좋게 돼지 한 마리를 몰고 가다가, 갑자기 커다란 칼을 뽑아 돼지 배를 갈랐다.

그리고 길게 늘어진 창자 한 줄기를 끄집어내더니 그를 향해 보여주며 말했다.

“이게 곱창이에요. 제가 해드릴게요.”

꿈속의 돼지 울음과 현실의 돼지 울음이 겹쳐지는 순간, 사정은 벌떡 깨어났다.

그제야 자기가 침상에 누워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옆집 돼지 울음은 여전히 귀청이 찢어지도록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정은 창밖을 한 번 보았다.

아직 날은 겨우 밝아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래층에서는 이미 사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노부부가 일어나, 그 여자의 돼지 잡는 일을 도우러 간 모양이었다.

방금 전 자신이 꾼 꿈을 떠올리자, 사정의 얼굴은 몹시 좋지 않게 굳었다.

돼지를 몰고, 돼지를 잡고, 돼지 창자를 삶고…

그 여자와 엮인 모든 것엔 어째 돼지가 빠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손으로 미간을 문지른 뒤, 다시 눈을 감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날카롭고 시끄러운 돼지 울음을 애써 무시하려 했다.

며칠만 더 견디면 된다.

해동청이 이미 소식을 물고 돌아갔으니, 그의 옛 부하들이 곧 이곳을 찾아올 것이다.

오래지 않아 그는 이곳을 떠날 수 있을 터였다.

그는 자신을 구해준 그 여자와, 그 노부부에게 보답으로 넉넉한 돈을 남겨둘 생각이었다.

번가 뒤뜰에서는, 번장옥이 굵은 밧줄로 돼지를 돼지잡이 걸상에 묶어두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닮아 타고난 괴력이 있어, 남자 몇이 달라붙어야 겨우 붙잡을 수 있는 돼지도 혼자서 눌러 제압할 수 있었다.

집에 있는 그 돼지잡이 걸상은 나무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일부러 사람을 시켜 돌로 만들어둔 것이었다.

돼지를 거기에 묶어두면, 아무리 몸부림쳐도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서 따로 꼬리를 붙들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

길고 예리한 방혈칼이 돼지 목 아래로 곧장 깊이 박혀 들어갔다.

손잡이까지 거의 잠길 정도였다. 날카롭던 돼지의 비명은 순식간에 멎었고, 피가 상처를 타고 흘러내려 돌걸상 아래 놓인 나무 대야를 가득 채웠다.

돼지를 잡을 때는 한 칼에 죽여야 길하다고 여겼고, 피도 많이 뺄수록 좋다고 했다.

도우러 온 조 아주머니는 가득 찬 돼지피 대야를 보고 금세 활짝 웃었다.

“이 한 대야면 며칠은 실컷 먹겠네.”

번장옥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방혈칼을 빼 들며, 드물게도 매우 냉랭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얼굴과 소매에는 핏방울이 몇 점 튀어 있었다.

그녀는 돼지를 잡을 때만 되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쉽게 다가서기 힘든 분위기가 감돌았는데, 아마 산 짐승을 죽이는 사람 몸에 배는 그 특유의 살기 같은 것일 터였다.

피를 다 뺀 뒤, 번장옥은 밧줄을 풀어 돼지를 끌고 뜨거운 물을 끓여놓은 큰 솥 옆으로 갔다.

이미 팔팔 끓고 있는 물을 퍼부어 돼지털을 익힌 다음에야 털 긁는 칼로 본격적으로 털을 밀기 시작했다.

장녕은 문가에 머리만 빼꼼 내밀고 마당 안을 구경하고 있었다.

조 아주머니가 말했다.

“영랑아, 나가서 놀아. 애들은 이런 거 보면 안 돼. 밤에 악몽 꿔.”

장녕은 작게 “전 안 무서워요…” 하고 중얼거렸지만, 그래도 꾸물꾸물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번장옥은 털을 다 밀고 다시 물로 한 번 깨끗이 씻어낸 뒤, 거의 조 아저씨나 조 아주머니 손을 빌리지도 않고 혼자서 돼지를 끌어올려 마당 기둥의 쇠갈고리에 걸었다.

그런 다음 해체용 칼로 돼지를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반쪽은 그대로 갈고리에 걸어두고, 다른 반쪽은 두 개의 걸상 위에 문짝을 걸쳐 만든 작업대로 메고 가 고기 손질을 시작했다.

조씨 노부부는 그 모습을 넋 놓고 보다가 멍하니 말했다.

“장옥이는 정말 아버지를 그대로 닮았구나…”

번장옥은 고기를 다 나눈 뒤, 서둘러 손수레에 싣고 정육 시장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어제 이향루의 이 주방장이 주문해두었던 스무 근 고기는 조 아저씨에게 부탁해 따로 보내기로 했다.

잠시 생각한 끝에, 그녀는 이 주방장 몫으로 삶은 내장도 조금 챙겨 넣었다.

훗날 그 사람한테 삶은 고기 장사를 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저쪽은 술집의 주방장이니 감히 아는 체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장사를 보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정육 시장에 도착했을 때, 번장옥은 제법 일찍 온 편이었다.

문을 연 가게는 몇 군데 없었고, 푸주한들이 막 오늘 팔 고기를 진열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를 알아본 사람이 놀라며 말했다.

“어이구, 장옥이도 이제 집 고깃간 다시 열려는 거냐?”

번장옥은 시원시원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한 달 넘게 굳게 닫혀 있던 자기 집 가게 문을 열었다.

안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물건들도 전부 아버지가 살아 있을 적 놓아 두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다만 옅은 먼지가 한 겹 내려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떠오르자 가슴이 시큰해졌지만,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녀는 곧 감정을 눌러두고 물을 길어 와 가게 안팎을 모두 닦은 뒤에야, 오늘 아침 잡은 돼지고기를 도마 위에 펼쳐 놓기 시작했다.

어젯밤 삶아둔 내장도 함께 진열했다.

진시 육각이 되어서야 장에는 조금씩 장 보러 나온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번장옥 집 고깃간은 자리가 좋았고, 다른 가게들에는 덩치 좋은 남자나 아주머니가 서 있는 반면,

그녀처럼 젊은 아가씨가 홀로 서 있으니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은 왠지 흥정이 쉬울 것 같아 한마디씩 물어보았다.

“고기 얼마예요?”

번장옥은 생긋 웃으며 값을 말해주고는, 오늘은 가게를 다시 여는 날이라 한 근 사면 삶은 내장 한 냥을 덤으로 준다고, 재수 좋게 시작하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아주머니들은 생고기를 사는데 삶은 고기까지 덤으로 준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서 대개는 번장옥 쪽에서 고기를 한 덩이씩 사갔다.

장이 막 열렸는데도 벌써 몇 건이나 장사가 되었다.

근처의 몇몇 고깃간 가운데 손님이 붙은 건 번장옥네 뿐이었다.

맞은편 고깃간의 푸주한은 눈이 뒤집혀 소리쳤다.

“번가 둘째 집 딸아, 장사는 장사답게 해야지 규칙을 깨면 어쩌자는 거냐? 이 장에서 고기값은 다 같은데, 네가 고기 사면 덤을 준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번장옥은 예전부터 그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겁내지 않고 또렷하게 받아쳤다.

“곽 아저씨, 그건 억울한 말씀이에요. 저희 가게 고기값이 다른 집이랑 다르기라도 해요? 값은 다 똑같잖아요. 어디가 규칙을 어긴 건데요? 덤은 오늘 저희 집 가게가 다시 문을 여는 날이라 재수 좋게 하려고 드리는 거예요. 어느 규칙에 안 된다고 써 있나요? 설마 제가 부모도 없는 고아라서 만만하게 보이시는 건 아니죠?”

상대는 말싸움에서 번장옥을 당해내지 못해 누런 얼굴만 새빨개졌다.

“참 입 하나는 살았구나, 네 말은 당해낼 수가 없네!”

곁에서 번가와 가까운 다른 푸주한이 한마디 거들었다.

“됐소, 곽씨. 장옥 아가씨는 오늘 돼지 한 마리만 팔 거요. 어린애 하나 붙잡고 왜 그렇게까지 따지시오?”

젊은 아가씨를 괴롭힌다는 소문도 좋을 게 없었다.

곽 푸주한은 억지로 한발 물러서며 말했다.

“좋아, 오늘은 네 덤 장사 계속해라. 대신 내일부터는 안 되는 거다!”

원래 번장옥도 덤은 하루만 줄 생각이었다.

내일부터는 이 양념 삶은 내장을 팔 생각이었으니, 그녀는 말했다.

“그야 물론이죠.”

그제야 곽 푸주한도 입을 다물었다.

가만히 서서 사람들이 오기만 기다리자니 고기 팔리는 속도는 여전히 더뎠다.

비록 맞은편 곽 푸주한 얼굴은 벌써 뒤틀릴 대로 뒤틀려 있었지만, 그쪽 가게로 가서 값을 물어 보려던 사람들도 그 사나운 얼굴을 보고는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

어차피 덤은 하루뿐이었다.

번장옥은 오늘 최대한 이름을 퍼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이 더 활기를 띠고 오가는 사람이 많아지자, 그녀는 즉시 목청을 높여 외치기 시작했다.

“고기 사세요— 한 근 사시면 삶은 내장 한 냥 덤으로 드려요!”

이 외침은 효과가 컸다.

금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고기값을 묻기 시작했다.

번장옥은 사람들과 흥정하는 한편, 손은 재빠르게 고기를 썰고 자르며 몇 문쯤은 아쉬운 척 양보해주었다.

아침 장이 절반도 지나기 전에, 그녀 가게 고기는 거의 다 팔려나갔다.

효과는 번장옥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맞은편 곽 푸주한 얼굴은 이제 거의 자기네 뒷간 판자만큼이나 썩은빛이 되었다.

번장옥은 못 본 척했다.

그녀는 자기 가게를 정리하고, 칼들을 가죽 칼집에 넣어 등에 멘 뒤, 가게 문을 닫고 불룩해진 돈주머니를 품에 안은 채 와시장으로 가서 돼지 두 마리를 더 살 생각을 했다.

곽 푸주한 가게 앞을 지나는데, 상대가 험악하게 말했다.

“내일 또 무슨 덤 같은 걸 주기만 해봐라. 내가 너 같은 고아 하나 괴롭힌다고 말 듣는 일은 없어야 할 테니!”

번장옥은 콧방귀를 차며 차갑게 흥 하고 지나쳤다.

내일은 덤으로 주는 게 아니라, 판다.

길을 걸으며 번장옥은 대강 계산을 해보았다.

아흔 근짜리 돼지 한 마리에서 머리와 내장을 빼면 고기는 대략 칠십 근 정도였다.

그걸 오늘 전부 생고기값으로 팔았으니, 오늘 매출총이익만 해도 이관이 넘었다.

내일 돼지머리와 내장을 삶아 팔면 또 돈이 들어온다.

돼지값을 빼도, 이 돼지 한 마리로 한 관이 넘게 순이익이 남는 셈이었다.

품속 돈주머니의 묵직한 무게를 느끼자 발걸음마저 가벼워졌다.

곽 푸주한이 시비를 걸었던 그 작은 불쾌함도 어느새 까맣게 잊혔다.

그런데 그녀가 정육 시장을 겨우 빠져나와 와시장 쪽으로 들어서려는 참에, 뒤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자기 이름을 불렀다.

“장옥아! 장옥아!”

번장옥이 돌아보니 조 목수였다.

그는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뛰어오며 얼굴 가득 다급함을 띠고 있었다.

번장옥은 얼른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조 아저씨?”

조 목수는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 말했다.

“당장 집으로 가봐라! 네 큰아버지가 도박장 사람들 데리고 네 집 문을 부수고 들어가, 집문서 찾는다고 집안을 다 뒤집어엎고 있어! 나랑 네 아주머니가 무슨 힘으로 말리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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