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음력 섣달, 눈이 내리고 있었다.
뜰 한가운데에는 끓는 물이 가득 담긴 큰 가마솥이 놓여 있었는데,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들은 솥에 닿기도 전에 김에 녹아 사라졌다.
바닥에 쌓인 눈은 이미 사람들의 발에 밟혀 질척한 진흙처럼 변해 있었다.
가마솥 옆에는 널판문을 받침대 위에 얹어 임시 도마로 쓰고 있었고, 그 위에는 반 토막 난 돼지 사체가 놓여 있었다.
번장옥은 식칼을 번쩍 들어 올렸다가 단숨에 내려쳐 돼지 뒷다리 하나를 잘라 냈다.
도마가 크게 흔들리며 뼛조각과 고기 부스러기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녀 손에 들린 칼은 등 부분이 두껍고 넓었으며,
전체는 검은색이었지만 칼날 만은 눈처럼 새하얗게 빛나 한눈에 보기에도 날카로웠다.
도마 옆에는 가죽을 벗기는 칼과 뼈를 발라내는 칼이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모두 같은 세트였다.

오늘은 진가에서 설맞이 돼지를 잡는 날이라 이웃과 친척들을 불러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집 안에서는 사람들이 화덕 주변에 모여 앉아 있었고, 바깥 뜰에서 일하고 있는 번장옥을 흘끔 거리며 수군거렸다.
“번씨 집안, 상중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쩌다 저 어린 계집애를 불러 돼지를 잡게 한 거지?”
“진가가 번씨 둘째 집안이랑 사이가 좋잖아. 미신 같은 건 안 따지는 거지…”
말을 하던 이는 번씨 집안 사정을 떠올린 듯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눈은 솜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뜰에서 칼을 휘두르는 번장옥은 낡은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키가 크고 늘씬했으며 머리를 단정히 묶어 올려 희고 고운 옆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가녀린 체구였지만 손놀림은 빠르고 정확했다.
번씨 둘째 며느리는 한때 임안진에 왔을 때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미인이었다.
질투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기루 출신일 것이라 수군거릴 정도였다.
그녀의 두 딸 역시 그 미모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막내는 아직 다섯 살이었지만, 큰딸은 이미 또렷한 미모를 갖추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송가와 혼약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면, 중매쟁이들이 줄을 섰을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번씨 둘째 부부는 산적에게 죽었고 어린 딸 둘만 남았지. 큰 형 번이는 재산이나 노리고 있고… 장옥이랑 동생은 정말 고생이 많아. 송연이 과거 급제하면 팔자 펴겠거니 했는데 혼약도 깨졌잖아. 그래도 장옥이는 독해. 도살을 배워서 집안을 살리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낮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큰딸이 팔자가 사납다더라. 부모도 그 때문에 죽었다고… 그래서 혼약도 깨졌대.”
다른 사람이 코웃음을 쳤다.
“그 점 어디서 봤는지나 알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송연은 이미 과거에 급제했고, 출세길이 열렸다.
도살업자의 딸과 혼인할 리 없었다.
번장옥은 이 모든 말을 들었지만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돼지를 다 손질한 뒤, 번장옥은 품삯을 받고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은 채 인사를 하고 나왔다.
설에는 길한 기운을 중시하기 때문에, 진가가 그녀를 불러 일을 맡긴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배려한 것이었다.
주인은 그녀에게 돼지 내장을 한 통 건네주었다.
이는 관례였다.
품삯 외에도 고기를 조금 나누어주는데, 대부분은 내장으로 대신했다.
번장옥은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약방에 들러 약을 두 첩 지었다.
하나는 동생 번장령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젯밤 데려온 남자를 위한 것이었다.
지금은 아직 숨은 붙어 있는 상태였다.
어제 그녀는 시골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눈밭에서 피투성이 남자를 발견했다.
산적에게 습격 당한 것으로 보였다.

부모 역시 산적에게 죽었기에, 그녀는 차마 그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의원도 반쯤 죽은 사람을 치료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이웃 조아저씨에게 부탁했다.
조아저씨는 예전에 수의사였다가 목수로 전업한 사람이었다.
치료가 제대로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숨은 붙어 있었다.
약도 그가 처방한 것이었다.
번장옥은 집으로 돌아왔다.
서쪽 골목은 습하고 어두웠으며,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송연과 그의 어머니를 마주쳤다.
두 사람은 고급 옷을 입고 있었다.
송연은 이제 완전히 선비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
반면 번장옥은 피 묻은 옷에, 칼주머니와 내장을 들고 있었다.
송씨 부인은 코를 막으며 비켜섰다.
번장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했다.
“비켜요.”
지나치는 순간 내장이 그의 옷에 묻었다.
송씨 부인이 화를 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비단 옷인데!”
송연은 담담히 말했다.
“어머니, 그냥 가시죠.”
번장옥은 집으로 돌아왔다.
눈덩이 같은 아이가 뛰어나왔다.
“언니!”
번장령이었다.
번장옥은 말했다.
“만지지 마라. 옷 더럽다.”
조아주머니가 나와 인사를 했다.
번장옥은 돼지 간을 건네며 말했다.
“조아저씨 술안주로 드세요.”
조아주머니가 말했다.
“어젯밤 데려온 사람 깨어났어.”
번장옥은 놀랐다.
방에 들어갔다.
약 냄새, 피 냄새, 땀 냄새가 섞여 있었다.
등불을 켰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았다.
번장옥은 순간 멈췄다.
그제야 알았다.
왜 번장령이 그를 “예쁘다”고 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