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관아로 가는 길
북풍이 가는 눈을 몰아치고 있었고, 추위는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큰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목을 움츠린 채 손을 소매 속에 넣고 있었지만,
번장옥은 검은 쇠몸의 뼈 칼 하나를 손에 든 채 손등에 핏줄이 불거지도록 힘을 주고
눈보라 속을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성 서쪽 골목 어귀에는 벌써 구경꾼들이 몰려 있었다.
욕설 소리, 부수는 소리, 말리는 소리, 아이 울음소리가 한데 뒤섞여 있었다.
누군가 눈썰미 좋게 번장옥을 보고 외쳤다.

“장옥이가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 손에 들린 뼈칼을 보자 모두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설마 장옥이 저 애가 큰아버지랑 칼부림까지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야 번대가 사람이 아니지. 번이우 부부 시신이 식기도 전에 조카딸 집과 땅을 자기 도박빚 메우는 데 쓰려고 드니, 밤에 꿈에 번이우 부부가 찾아오지 않을까 무섭지도 않은가…”
“도박장 놈들이 어디 보통 놈들이야. 장옥이 혼자 칼 하나 들었다고 겁먹고 물러설 사람들이 아닌데…”
번가 집 앞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깨진 병과 단지, 뒤집힌 탁자와 걸상들이 문 앞에서부터 집 안까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덩치 큰 사내 몇이 아직도 집 안에서 물건을 깨부수고 뒤지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침상 위 이불까지 바닥에 내던져져 있었다.
장녕은 조 아주머니 품에 안겨 목이 쉬도록 울고 있었고, 조 아주머니 역시 눈이 시뻘게진 채 소리만 질렀다.
“그만 부숴요! 그만 좀 부숴요!”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번대는 한 손을 감싼 채 도박장 관리처럼 보이는 사내 곁에서 허리를 굽실거리며 말했다.
“금 나리, 문서만 찾으면 제가 관아 가서 명의 넘기고 이 집은 제 것이 됩니다. 그럼 돈도 생기고, 도박빚도 갚을 수 있습니다. 갚을 수 있다니까요.”
금 나리라 불린 사내는 번대를 정면으로 보지도 않은 채 코웃음을 쳤다.
“오늘 집문서를 못 찾으면, 네 손 하나부터 잘라 가져가서 보고할 거다.”
번대는 감싸고 있던 손을 더 꽉 움켜쥐었다.
“찾을 수 있습니다, 찾을 수 있어요…”
그때 문가에서 사람 고막을 울릴 만큼 날카로운 외침이 터졌다.
“전부 멈춰요!”
그 한마디는 칼날처럼 날카롭게 방 안을 꿰뚫었고, 집 안의 모두가 동시에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과 바람을 온몸에 묻힌 여자가 문가에 서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손에 쥔 뼈칼의 눈빛 같은 칼날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문설주 사이로 비치는 하늘빛조차 한순간 낮아진 것 같았다.
장녕은 번장옥을 보자마자 입술을 삐죽이며 울음을 터뜨렸다.
“언니…”
번대는 번장옥을 보는 순간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몸을 낮춘 채 도박장 관리 옆에 붙어 감히 입도 떼지 못했다.

반면 도박장 관리 금 나리는 번장옥 손의 도살칼을 한 번 흘겨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식 웃었다.
“어이쿠, 번가 큰아가씨 아니신가.”
번장옥은 온통 엉망이 된 집안을 한 바퀴 훑어본 뒤,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말했다.
“사람들 데리고 당장 나가요.”
금 나리는 눈꺼풀을 살짝 치켜 올렸다.
부모도 없는 고아 주제에 너무 뻗대는 것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도박장은 규칙대로 움직이는 거요. 번대가 이 집이 자기 거라고 했으니, 우린 그 집문서를 받아 빚 대신 챙기려는 것뿐이오. 네 집안 사정까지 도박장이 알 바는 없지.”
번장옥의 칼 같은 눈빛이 번대에게 꽂혔다.
“이 집이 당신 거라고요?”
번대는 번장옥을 똑바로 보지 못한 채, 애써 정을 들먹이며 말했다.
“큰조카야, 큰아버지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래. 내가 도박장에 돈을 졌는데, 오늘까지 못 갚으면 손 하나를 내놔야 한단 말이다. 번이우랑 네 작은어머니는 갔고, 너랑 영랑이는 남자 형제가 없잖니. 나중에 시집가면 시댁에서 괄시 안 받으려면 친정 쪽 형제가 버티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 네가 이번에 집문서만 내놔서 큰아버지 빚만 갚게 해주면, 내가 앞으로 너랑 영랑이를 친딸처럼 여기고, 네 사촌오빠도 네 친오빠처럼 되어줄 테니, 나중에 시집가도 친정에 의지할 데가 있지 않겠니…”
번장옥은 그런 헛소리를 들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녀는 냉소하며 말했다.
“집을 빚 대신 넘기고 싶으면 당신 집을 넘겨요. 왜 우리 집을 갖다 빚 갚겠다는 거예요? 당신 그 도박꾼 아들도 당신이랑 똑같아서, 나중에 손 안 잘리면 다행일 판인데, 내가 그런 사람을 믿고 의지해요?”
번대는 체면이 구겨지자 손가락으로 번장옥을 가리키며 버럭했다.
“네가 어쩜 그렇게 독한 심보를 가졌냐? 네 사촌오빠를 그렇게 저주해? 그놈도 장가가야 하는데, 이 집까지 빼앗기면 뭘로 아내를 맞이 하란 말이냐? 너랑 영랑이, 너희 둘도 결국은 시집갈 계집들인데 집을 붙들고 뭐 하려고?”
번장옥은 화가 치밀어 오히려 웃어버렸다.
“우리 부모님이 나랑 영랑이한테 남긴 걸, 내가 어떻게 하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에요.”
번대는 번장옥이 끝까지 문서를 내놓지 않을 걸 알자 더는 정 따위 내세우지 않았다.
본색을 드러내며 악독하게 말했다.
“번이우한테 아들이 없으면, 그가 죽은 뒤 집이랑 땅은 관아로 가도 결국 나한테 오는 거다. 시집갈 계집애가 뭘 다투겠다고? 시집갈 집에 그 재산 들고 가려고?”
그는 더욱 독한 말을 쏟아냈다.
“부모를 잡아먹고 송씨 집에서도 파혼당한 살성 든 계집이, 시집이나 제대로 가겠냐 싶으니 재산이라도 붙들고 혼수 삼으려는 거 아니냐? 그 병약한 동생도 네가 잡아먹어서 몇 해 못 살 것 같은데? 대체 누가 죽기 싫다고 너 같은 액받이를 데려가겠어?”
아무도 번장옥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 손의 도살칼은 이미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 있었다.
칼날은 거의 번대의 귀를 스치듯 지나가더니, 등 뒤 벽에 쾅 하고 박혔다.
잘려 나간 머리카락 몇 올이 바닥으로 흩날렸다.
번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리가 체처럼 떨렸다.
입은 벌어진 채였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집 안의 도박장 관리 금 나리와 그가 데리고 온 사내들도 애초엔 구경하는 눈치였지만, 이 광경을 보고는 눈빛이 달라졌다.
눈앞의 여자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번장옥은 눈을 치켜뜨고 번대를 노려보았다.
“우리 부모님이 남긴 재산은 전부 영랑이 약값과 진료비에 쓸 거예요. 당신 오늘 당장 도박장 놈들 데리고 나가지 않으면… 도박장은 당신 손 하나만 원하겠지만, 난 당신 집안 식구 전부 베어버리고 우리 부모님 뵈러 갈 거예요!”
“너…!”
번대는 크게 몸을 떨었다.
번장옥의 눈빛이 너무 서늘해 차마 마주 보지 못한 채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럼 관아에 가서 따져보자! 관아에서 이 집을 너한테 줄지, 나한테 줄지 판결해보자고!”
그는 다시 허리를 굽실거리며 의자에 다리를 벌리고 앉은 도박장 관리자에게 말했다.
“금 나리, 이거… 이틀만 더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금 나리는 차갑게 비웃었다.
“회현 도박장이 빚 받는 데 그런 선례는 없소. 그런 소문 나면, 남들이 우리 도박장에 사람이 없는 줄 알지 않겠나. 빚도 못 받는 도박장이라고.”
그는 번대를 흘겨보며 말했다.
“아니면 네 오른손을 지금 내놓을 테냐?”
번대는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이 계집애가…”
그는 번장옥을 힐끗 보고는 여전히 겁먹은 얼굴이었다.
금 나리는 차갑게 웃었다.
“네 물건이라는 게 확실하면, 데려온 놈들이 알아서 뒤지면 되는 거지.”
그에게는 번대의 손 하나보다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이 집이 더 중요했다.
그는 도박장 사내들을 향해 소리쳤다.
“뭐 하고 서 있어? 계속 뒤져!”
도박장 사내들은 다시 우르르 집 안을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번장옥은 이를 꽉 물었다.
주먹에서는 뼈마디가 우두둑 울렸다.
금 나리가 웃으며 말했다.
“번 아가씨, 원망은 말아요. 도박장 규칙이 원래 이래.”
조 아주머니는 이 광경을 보며 속이 타들어갔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급히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녀는 다른 데로 가지 않고, 구경꾼 틈을 비집고 송씨 집 문을 두드렸다.
“송연아! 번대가 도박장 사람들 데리고 장옥이 집 문서 빼앗으러 들어왔어! 넌 성현 책 읽는 사람 아니냐! 번이우 부부가 너한테 잘해준 거 생각해서라도, 나와서 장옥이 편 한번 들어줘라! 너는 거인님이니, 도박장 놈들도 너한텐 체면 좀 차릴 거 아니냐!”
골목 사람들은 다 번가 일이 터진 걸 알고 있었지만, 유독 송씨 집만은 대문을 닫은 채 아무 반응도 없었다.
조 아주머니가 문을 부술 듯 두드려도 안에서는 대답 한마디 나오지 않았다.
끝내 조 아주머니는 울면서 악을 썼다.
“송연, 네 책을 개 뱃속에 처넣었냐? 네 아비 죽었을 때 관 살 돈도 없던 걸, 누구 집이 네 아비 관 사서 장례 치르게 해줬는지 생각도 안 나? 네 아비가 저승에서 관짝에 눌려 뼈가 삐걱거리는 소리 안 들리냐!”
조 아주머니의 날카롭고 처절한 목소리는 골목 전체에 울려 퍼졌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에 있던 송 어머니는 분에 몸을 떨었다.
“저 입 더러운 미친 계집… 너는 이미 번가 계집애랑 파혼했는데, 그 집 일은 그 집 일이지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 내가 나가서 저 계집 한번 혼내주고 말겠어!”
그러자 줄곧 책상 앞에 엎드려 책을 보고 있던 사람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어머니.”
그제야 송 어머니는 걸음을 멈추었다.
“됐어, 됐어. 저 계집은 우리 집까지 끌어들이려는 거야. 내가 나가면 저 계집 수에 말리는 거지! 연아, 너도 절대 나가지 마라. 너는 공명을 더 쌓아야 하는 사람이다. 저 집안하고 다시는 엮이지 마.”

번가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조씨 집 다락에서도, 사정은 당연히 옆집의 소란과 조 아주머니의 통곡 섞인 욕설을 모두 듣고 있었다.
상대 쪽은 수가 많았고, 그 여자 하나에다 늙은 부부 둘은 도울래야 도울 수도 없었다.
창밖의 흐린 하늘은 오후 들어 맑아지고 있었고, 처마기와에 맺힌 서리가 햇빛을 받아 엷고 차가운 금빛을 내고 있었다.
사정의 얼굴 역시 그 햇빛 아래 아무 온기도 없어 보였다.
입술은 아래로 굳게 눌려 있었고, 기분이 몹시 나빠 보였다.
저 잡놈들이 정말 시끄러워 사람 귀를 찢는군.
그는 피딱지가 맺힌 창백한 손으로 침상 머리맡에 세워둔 목발 한 쌍을 짚고 힘겹게 일어섰다.
그 목발은 오늘 조 아저씨가 막 만들어 가져다준 것이었다.
상처가 아직 다 낫지 않았으니, 이렇게 갑자기 일어나 땅을 디디는 것만으로도 붕대로 감아둔 상처에 다시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목발을 짚은 채 한 걸음 한 걸음 아주 안정적으로 나아갔다.
오늘 옆집 저 쓰레기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자신은 점심잠을 잘 기분도 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번가 집 안은 이미 도박장 사내들 손에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심지어 바닥 타일까지 막대기로 하나하나 두드려보며 숨긴 공간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장녕은 목이 쉰 채 훌쩍이며 번장옥 뒤에 바짝 숨었고, 번장옥은 한 손으로 동생을 감싸 안은 채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아무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한 사내가 번장옥 부모의 위패를 모셔둔 탁자 위를 뒤지다가, 위패까지 바닥에 넘어뜨렸다.
그리고 그걸 밟아 깨서 안에 숨겨둔 공간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의 뒷깃이 잡혔다.
다음 순간 거센 힘이 그를 그대로 집어던졌고, 사내는 문간까지 날아가 머리를 문지방에 처박았다.
넘어지는 순간까지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지 못한 얼굴이었다. 집 안의 다른 사람들도 전부 얼어붙었다.
번장옥은 조금 전 그 사내가 서 있던 자리에 어느새 서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부모의 위패를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문을 통과하는 찬바람이 그녀의 귀밑머리를 흔들었고, 손바닥 끝에서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분을 억누르며 손톱이 자기 손바닥을 찔러 피가 난 것이었다.
그녀가 낮고 평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요. 나갈래요, 안 나갈래요?”
그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차분했지만, 그 차분함 때문에 오히려 오싹했다.
도박장 사내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반면 번대는 벌써 두 다리를 잽싸게 놀려 슬며시 문 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아까 번장옥이 던진 그 칼 때문에 아직도 혼이 반쯤 날아가 있었던 것이다.
금 나리는 오랫동안 빚을 받아오며 이런저런 사람을 다 상대했지만, 오늘처럼 노골적으로 체면을 구긴 적은 드물었다.
밖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돈을 못 받고 돌아가면, 창피한 건 자기 하나가 아니라 도박장 전체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 자기 옆의 사내를 걷어찼다.
“죽었냐? 계속 부숴! 내가 임안진에서 빚 받아온 세월이 얼만데, 고작 계집애 하나 무서워할 줄 아냐!”
사내들도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였지만, 문간에 널브러진 동료를 보니 아무래도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 계집은 힘이 이상했다.
정말 재수 없는 괴력이었다.
그들은 눈짓을 주고받더니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번장옥은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그녀는 발끝으로 아까 그 사내가 놓친 몽둥이를 툭 차올려 한 손에 쥐고, 허공에서 한 바퀴 크게 휘둘렀다.
복부를 정통으로 맞은 몇몇은 그대로 몸을 꺾으며 날아갔고, 어떤 놈은 입에서 음식 찌꺼기까지 토해냈다.
번장옥은 그들에게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 손의 긴 막대는 윙윙 바람을 가르며 돌았다.
휩쓸고, 치켜올리고, 내리치고, 베어내듯 찍어내렸다…
차라리 칼날 없는 장병도를 휘두르는 것 같았다.
도박장 사내들은 하나같이 울부짖으며 차례차례 자루처럼 집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구경하던 사람들 입에서는 놀라 숨 들이키는 소리가 연달아 새어나왔다.
번대는 번장옥이 이 칼법을 펼치는 걸 본 순간부터 이미 얼굴빛이 잿빛으로 질려 있었다.
그는 메추라기처럼 벽 한구석에 웅크려 있었다.
금 나리는 형세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도망치려 했지만, 아직 문도 다 못 나갔을 때였다.
검은 쇠칼 하나가 뒤에서 날아와 문짝에 쾅 하고 박혔다.
코끝이 잘릴 뻔했다.
금 나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번 아가씨… 오해요, 다 오해입니다…”
그때 군중 바깥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관차 왔다! 비켜요, 비켜!”
평소엔 못된 짓만 하던 그 무리도, 이 순간 관차가 왔다는 말에 모두 한꺼번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조 목수가 관차들을 이끌고 식은땀을 흘리며 돌아왔다.
“대낮에 고아 하나를 이렇게 괴롭히다니, 네놈들 아직도 왕법이…”
그는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번가 대문 밖에는 도박장 사내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금 나리는 뼈칼 한 자루에 막혀 문간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왕법” 두 글자가 그의 목구멍에서 막혀버렸다.
한편, 막 목발을 짚고 조씨 집 다락에서 내려오던 사정도 이 장면을 보고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그는 전부터 그 여자의 호흡이 길고 안정적이라, 보통 사람보다는 무예를 익힌 이 같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
구경꾼들은 전부 번가 집 쪽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에, 누구도 사정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사정은 이미 골칫거리가 해결된 걸 보고 자기 옷깃에 다시 배어나온 피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마에는 이미 식은땀이 촘촘히 맺혀 있었다.
마침 송씨 집 대문이 열리고 푸른 옷을 입은 선비 하나가 밖으로 나왔는데, 관차들이 보이자 번가 쪽을 한 번 힐끗 보고는 표정이 묘해졌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집 안에서 번장옥은 분노 끝에 끌어올랐던 살기를 겨우 가라앉힌 채, 무릎을 꿇고 말없이 부모의 위패를 주워 들었다.
손에 난 피가 위패에 묻어 있었다.
그녀는 소매로 그것을 닦아 냈다.
이 장병도 칼법은 전부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쓰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정말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 아니면 써서는 안 된다고.
그렇지 않으면 큰 화를 부를 수 있다고.
오늘 그녀는 그 가르침을 어겼다.
하지만 목숨 때문은 아니었다.
부모의 위패 때문이었다.
번장옥은 위패를 품에 안고, 충혈된 두 눈을 꼭 감았다.
아버지, 장옥을 나무라지 마세요.
관차가 개입하면서 이후의 처리는 훨씬 차분하게 이루어졌다.
번장옥은 도박장 사람 여럿을 때려눕혔지만, 저쪽이 먼저 무단으로 남의 집에 쳐들어와 물건을 부수고 뒤진 것이 분명했다.
관차들은 도박장 사람들을 호되게 꾸짖었고, 금 나리에게 번장옥 집의 피해를 배상하라고 했다.
번장옥에게 도박장 사람들의 약값을 물리지는 않았다.
번대는 법대로 따지면 번장옥 집이 자기 것이라며 작은 목소리로 우겼지만, 관차는 그를 힐끗 보며 말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네가 정말 집을 달라고 다투고 싶으면, 고소장을 써서 관아에 내라. 현령 대인께 판결을 청하면 되지.”
그 말을 듣자 번대는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다.
도박장 사람들은 조롱박 줄에 매달린 것처럼 서로를 부축하며 번가를 빠져나갔고, 번대도 재빨리 꽁무니를 뺐다.
구경꾼들도 그제야 하나둘 흩어졌다.
번장옥은 관차 우두머리를 향해 말했다.
“왕 아저씨, 고마워요.”
왕 포두는 그녀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부터 알던 사이였다.
조 목수가 한달음에 달려가 그를 불러온 것도, 번장옥을 좀 도와달라는 뜻에서였다.
왕 포두가 말했다.
“오늘은 저놈들이 먼저 잘못한 게 분명했으니, 내가 법대로 처리한 것뿐이다. 그렇다고 네 편을 든 건 아니야. 하지만 번대가 진짜 관아에 고소장을 내면… 네 집은 지키기 어려울 게다.”
번대가 지금까지 관아에 고소장을 내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송사가 번거롭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송사꾼을 쓰는 데도 돈이 꽤 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번장옥을 힘으로 눌러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이상, 자기 도박빚을 막기 위해서라도 어쩌면 정말 관아에 소장을 낼지도 몰랐다.
번장옥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와 패배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생각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요. 송사꾼한테도 사람 시켜 알아봤는데, 다들 제가 부모가 남긴 집이나 땅은 제 이름으로 넘길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송사꾼은 남을 대신해 고소장을 쓰고 송사를 맡는 사람들이니, 조정 법도엔 아주 밝았다.
왕 포두는 오랫동안 사건을 다뤄온 사람답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방법이 하나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