归鸾 귀란 원작소설 제2장

“사람은 두고 가게.” (“你把人留下吧.”) 

​눈이 그친 뒤 날이 갓 개어서, 푸른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고, 건조하고 찬 바람에 멀리서 주루 깃발이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려(蕭厲)는 반쯤 몸을 굽히고 앉아 팔꿈치를 무심하게 무릎 위에 얹었다.

소매에 묶인 가죽 보호대는 낡아서 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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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입에 물고 있던 꼬챙이를 뱉어내더니, 짐짓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진 어르신이 도박장에 빚진 은 마흔 냥이 벌써 반년이나 지났는데, 언제 갚을 생각인가?”

노예 상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억지로 울상보다 더 보기 흉하고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이형님, 제발… 절 놀리지 마십시오. 제가 어찌 형님 앞에서 ‘어르신’ 소리를 듣겠습니까? 형님이야말로 제 어르신이십니다! 도박장에 빚진 은자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제게 하늘만큼 큰 담력이 있다 한들, 감히 이 옹성에서 한 대행수의 돈을 떼먹겠습니까!”

소려가 얕게 코웃음을 치더니, 노예 상인이 바닥에 떨어뜨린 채찍을 집어 들었다.

그는 채찍 몸체를 구부려 노예 상인의 쥐새끼 같은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

“감히? 감히 못 하는 놈이 보름 넘게 우리 형제들을 피해 다닌 거냐?”

옆에 있던 한 사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 형님, 이 자식 아주 교활한 놈입니다. 일단 다리 하나를 분질러서 본때를 보여주죠!”

노예 상인은 겁에 질려 연신 용서를 빌었다.

“안 됩니다, 안 돼요! 소 형님, 소 어르신! 돈 갚겠습니다! 옹성을 떠나 있던 보름 동안 제가 장삿거리를 찾으러 다니지 않았습니까. 어렵사리 계집 몇을 구해서 좋은 값에 팔아 도박장 빚을 갚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저 천한 년이 수작을 부려 풍진을 역병인 척 꾸미는 바람에, 취홍루 행수도 겁이 나서 제 손에 든 계집들을 사지 않겠다고 하지 뭡니까! 저도 저년에게 속아 병이라도 옮아서 손해를 볼까 봐 방금 헐값에 다 넘겼습니다. 본전도 못 건졌단 말입니다!”

그는 온유를 가리키며 눈물 콧물을 쏟으며 모든 잘못을 그녀에게 돌렸다.

온유는 등 뒤의 찌르는 듯한 통증이 겨우 가라앉았을 즈음, 이 빚쟁이들에게 불똥이 튈까 봐 기어 일어나 구석에 웅크리고 앉았다.

갑자기 노예 상인이 손가락질을 하자 그녀의 심장도 덜컥 내려앉았다.

이 사내들이 자신이 역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노예 상인에게 돈을 받아내지 못해 나쁜 마음을 품을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부들부들 떠는 척하며 겁에 질린 눈으로 그쪽을 살짝 훔쳐보았고, 마침 홍진이 가득한 반쪽 얼굴이 드러났다.

이 행동에 정말로 겁을 먹었는지 빚을 받으러 온 사내 하나가 “씁” 하고 소리를 냈다.

“얼굴이 말벌집 같네. 한 번만 봐도 어제 먹은 국밥까지 다 게워 내겠군!”

뜻밖에도 노예 상인을 심문하던 청년이 그 말을 듣고 이쪽을 힐끗 보았다.

다시 한번 그 짙고 공격적일 정도로 새까만 눈동자와 마주치자, 온유는 이유 없이 가슴이 뛰었다.

그녀는 당황한 척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안은 채, 벽 구석에서 연신 몸을 떨었다.

찬 바람이 다시 일자 그녀의 얇은 삼베옷이 가녀린 등을 드러냈고, 그사이로 선명한 채찍 자국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소려의 시선이 여자의 채찍 자국이 남은 등 위에 잠시 머물렀다.

그는 시선을 거두고 채찍 끝을 노예 상인의 턱밑에 갖다 대며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뭐야, 네 장사가 밑지든 말든 그것까지 내가 일일이 뒤치다꺼리 해 줘야 한단 말이냐?”

노예 상인은 겁에 질려 얼른 부인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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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려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 검은 눈동자에는 분명 인내심이 바닥나 있었다.

그는 손에 든 채찍을 조금 더 밀어 넣어 노예 상인의 턱살이 움푹 패게 만들고는 나른하게 말했다.

“갚을 돈이 없다? 좋다, 네 손 하나 발 하나로 대신해도 상관없지.”

노예 상인은 거의 바지에 오줌을 지릴 지경이 되어 품에서 전대 주머니를 꺼냈다.

그는 콧물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안 됩니다! 안 돼요! 소 이형, 소 어르신! 정말 이것뿐입니다. 제발 사정을 봐서 며칠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집에는 노모와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소려는 손에 든, 전대 주머니의 무게를 가늠해 보더니 뒤에 있는 동료에게 던져주었다.

그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노예 상인의 꼴을 보며 말했다.

“좋다, 이틀 주지. 이틀 뒤에도 은자가 보이지 않으면—”

그가 손에 든 채찍을 그대로 휘두르자 노예 상인의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그의 뺨 위에 시뻘건 선혈 자국이 길게 내려앉았다.

소려는 채찍을 던져버리고 일어서며 말했다. “내 규칙은 네놈도 알겠지.”

노예 상인은 피가 멎지 않는 코와 입을 움켜쥐고 고통에 허리를 굽힌 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압니다, 압니다요. 이틀 뒤에는 기필코 돈을 대령하겠습니다……”

온유는 줄곧 구석에 웅크린 채 존재감을 없애려 애썼다.

이윽고 사내가 일어나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서둘러 옆으로 더 피하려 했지만, 얼어서 굳어버린 손은 등 뒤의 벽돌 조각을 꽉 누르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추위 때문이기도 했고, 지금까지 버텨온 탓에 기력이 쇠한 때문이기도 했다.

사내는 그녀의 작은 움직임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두 동료를 데리고 그녀 앞을 지나갈 때, 찬 바람에 날린 그의 옷 자락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살짝 스쳤다.

그들이 멀어지자 온유는 그제야 긴장했던 마음을 조금 놓았다.

저쪽에서 노예 상인도 아이고 소리를 내며 바닥에서 기어 일어났다.

그의 가죽 겉옷은 이미 바닥의 진흙탕에 쓸려 엉망이 되었고, 털 모자도 벗겨져 흉측한 곰보 머리를 그대로 드러냈다.

찬 바람이 불어오자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입을 비죽거리며 인상을 써댔다.

온유는 반 토막 난 벽돌을 쥔 손에 살며시 힘을 주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칠흑 같은 눈동자가 죽기 살기로 덤비겠다는 결연하고도 고요한 빛을 띤 채 조용히 노예 상인을 응시했다.

—— 그녀에게 허락된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노예 상인은 돼지머리처럼 부어오른 얼굴로 코피를 멈추려 애쓰고 있었다.

소려가 휘두른 채찍이 비껴가는 바람에 하마터면 코 뼈가 완전히 부러질 뻔했다.

그는 천 조각을 찢어 콧구멍에 쑤셔 넣으려 했지만, 콧방울에 닿기만 해도 통증에 숨을 들이켰다.

간신히 천 조각을 밀어 넣은 노예 상인이 소려 일행이 떠난 방향을 향해 “퉤” 하고 침을 뱉자, 안면 근육이 움직이며 다시금 통증이 몰려와 얼굴을 찌푸렸고 눈가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창기가 낳은 개 잡종 놈……”

몸을 돌려 온유를 발견한 그는 통증이 심한 탓에 다시 시비를 걸 마음도 들지 않아, 그저 거친 목소리로 악을 썼다.

“얼른 수레로 꺼지지 못해!”

온유의 몸에 난 역병이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는 당연히 온유를 놓아줄 리 없었다.

온유는 담벼락 밑에 기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묵묵히 노예 상인을 주시하며 손을 썼을 때의 승산을 짧게 저울질해 본 뒤, 결국 손바닥에 쥐고 있던 벽돌 반 토막을 내려 놓았다.

그러고는 담벼락을 짚고 힘들게 일어나 소달구지를 향해 걸어갔다.

—— 지금의 몸 상태로 노예 상인과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었고, 공연히 매만 더 벌 뿐이었다.

소달구지가 덜컹거릴 때마다 찬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온유는 추위를 이기려 얇은 옷자락을 최대한 여몄지만, 여전히 이가 맞부딪힐 정도로 떨렸고 등 뒤의 채찍 자국도 화끈거리며 아파졌다.

시야는 자꾸만 흐릿해 졌으나 정신줄을 바짝 부여잡고서야 겨우 기절하지 않을 수 있었다.

노예 상인이 그녀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 수 없었으나, 소달구지는 낮은 민가 골목을 이리저리 꺾어 들어가더니 마침내 어느 민가 앞에 멈춰 섰다.

온유는 소달구지의 나무 창살에 무력하게 기댄 채 노예 상인이 다가가 문을 두드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비쩍 마른 사내가 나왔다.

“어이, 진 곰보, 얼굴이 왜 그 모양인가?”

진 곰보가 낙담하며 말했다.

“말도 마시오, 형님. 이번엔 형님이 좀 도와주셔야겠소……”

그는 앞뒤 사정을 몇 마디로 설명하더니 소달구지 안의 온유를 가리켰다.

“이 계집이 정말이지 일등 미인이라오. 형님이 얘를 사서 나중에 화락가에 팔면 분명 한몫 챙길 수 있을 거요!”

온유는 노예 상인이 자신을 동종 업자에게 전매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비쩍 마른 남자가 이쪽을 바라볼 때 수법을 다시 써서 발진이 돋아 처참해진 얼굴을 드러냈다.

사내는 즉시 주저하는 기색을 보였다.

진 곰보의 말만 믿고 돈을 내어 온유를 살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대놓고 거절하여 정을 상하게 할 수도 없었기에 이렇게 말했다.

“자네도 참 어리석군. 저 계집 얼굴이 나아서 취홍루에 판다 해도 기껏해야 열 냥이나 받을 텐데, 그걸로 자네 도박 빚을 어찌 갚겠나? 차라리 생색이나 내게 그 성깔 더러운 소 씨 놈에게 이 계집을 넘기고 기한을 좀 더 늦춰달라고 빌게나. 그 사이에 자네는 다른 일거리를 찾아 돈을 마련하면 되지 않겠나.”

진 곰보는 참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시다시피 지금 꼴이 이래서 단시간에 나을 것 같지도 않은데, 무서워서 어디 소 씨 놈 앞에 보낼 엄두가 나겠소.”

비쩍 마른 남자가 타일렀다.

“이틀 전에도 소려 그놈이 아행(거간소)에 들러 제 노모에게 줄 여종을 구하려 했는데 마땅한 애를 못 찾았네. 그냥 노모를 모실 몸종으로 보낸다고 하면 되지 않겠나? 설령 소려 그놈이 처음에는 자네를 용서하지 않더라도, 일단 얼마간 몸을 피하고 있게나. 나중에 그놈이 이 미인 얼굴을 보게 되면 화낼 마음이 싹 가시지 않겠나?”

진 곰보는 그 말에 실마리를 얻어 얼굴에 금세 미소를 띠었다.

“역시 형님 머리가 좋구려. 이 아우가 신세를 졌소.”

두 사람의 모의를 들은 온유는 마음속으로 오싹함을 느꼈다.

그녀는 빚을 받으러 왔던 그 건달의 나른하면서도 야성적인 검은 눈동자를 떠올렸다.

몸 앞에 둔 손이 자기도 모르게 꽉 쥐어졌다.

노예 상인의 손아귀가 용담이라면, 그 건달의 집인들 호랑이 굴이 아니겠는가?

만약 노예 상인이 자신을 보낸 뒤 숨어버린다면, 빚을 받지 못한 건달이 자신에게 화풀이하며 매질을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걱정은 걱정일 뿐, 지금은 남의 손에 매인 몸이라 온유로서도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날 오후, 진 곰보는 소려가 집에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본 뒤 온유를 데리고 그 집을 찾아갔다.

문을 열어준 이는 관자놀이에 백발이 섞인 중년 부인이었다.

그녀는 색이 바랜 낡은 솜옷을 입고 있었는데, 눈가에 잔주름이 잡혀 있었음에도 젊은 시절 꽤나 미인이었음을 짐작게 했다.

다만 몸이 좋지 않은 듯 문틀을 짚고 기침을 하며 물었다.

“누구를 찾으시오?”

진 곰보가 얼굴 가득 비굴한 웃음을 띠며 물었다.

“대낭(아주머니), 여기가 소려, 소 이가네 댁 맞지요?”

소혜낭(萧蕙娘)은 진 곰보와 그의 뒤편에서 포승줄에 묶인 채 발진으로 푸르죽죽하게 질린 온유를 번갈아 살펴보았다.

그녀의 목소리에 의구심이 서렸다.

“맞소만…… 아들이 지금 집에 없구려. 찾으러 왔다면 나중에 다시 오시게나.”

진 곰보가 서둘러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여기가 소 이형님의 집이면 됐습니다. 저는 노부인께 몸종을 보내드리러 왔습니다.”

그는 말을 하며 온유를 앞으로 밀치며 말했다.

“어서 노부인께 인사드리지 않고 뭐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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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는 그에게 떠밀려 비틀거렸고,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찬바람에 붉게 충혈된 눈이 드러났다.

그녀는 이곳으로 보내지는 것이 또 다른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것일까 봐 걱정했으나,

부인의 인상이 선하고 그녀의 아들처럼 흉악해 보이지 않자 문득 이곳에 머무는 것이 어쩌면 한 줄기 생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예 상인에게 다시 팔려가 기루로 넘겨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기에 그녀는 노예 상인의 말대로 인사했다.

“노부인을 뵙습니다.”

그녀의 등에 스며든 채찍 자국이 눈에 띄었고, 손과 얼굴은 시퍼렇게 얼어붙었으며 눈시울까지 붉어져 보는 이의 마음 가장 연약한 곳을 단번에 찔렀다.

목소리 또한 심하게 쉬어 있어 사람들의 가련함을 자아냈다.

부인은 그녀를 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하면서도 예사로운 일이 아님을 직감하고 진 곰보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누구인가? 왜 나에게 몸종을 보내는 것인가?”

진 곰보가 급히 말했다.

“소인은 진육(陳六)이라 하며, 거간 바닥에서 입에 풀칠이나 하며 살고 있지요. 오늘 소이 형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덕분에 손발 하나 잘리지 않고 목숨을 건졌으니, 그 감격함이 이루 말할 데가 없습니다. 듣자 하니 형님께서 얼마 전 대낭을 모실 몸종을 구하러 가셨다가 마땅한 아이를 찾지 못하셨다기에, 마침 제 손에 요런 계집이 하나 있어 데리고 온 참입니다.”

소혜낭은 그가 노예 상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안색이 싸늘하게 식었다.

“이 늙은이 몸 하나는 스스로 건사할 수 있으니 수발들 사람은 필요 없네. 사람은 데리고 돌아가게.”

그녀가 말을 마치고 문을 닫으려 하자 진 곰보가 서둘러 문을 붙들었다.

“대낭, 대낭, 저는 그저 소 이형님께 감사해서 노부인을 공양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 아이 얼굴에 붉은 반점이 돋아 흉해 보이지만 이건 풍진일 뿐이라 며칠 지나면 나을 겁니다! 본래는 꽃처럼 고운 아이인데, 기루에 팔려 가지 않으려고 제 얼굴을 이렇게 만든 것이랍니다…….”

소혜낭은 그 말을 듣고 문을 닫으려던 힘을 조금 뺐다.

그녀는 다시 온유를 바라보았다.

온유는 지금 입술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억지로 버텨왔으나 이제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심지어 진 곰보와 눈앞의 부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들리지 않았고, 시야마저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손바닥을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꽉 쥐고서야 간신히 그 정신 한 자락을 유지했다.

부인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녀가 눈을 들었다.

맑은 달빛 같은 두 눈에는 너무나 많은 피로가 쌓여 멍한 기색이 서려 있었으나, 눈동자 깊은 곳에서는 또 다른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꽃이 그녀를 지탱해 이곳에 꼿꼿이 서 있게 했고, 그녀의 눈시울을 뜨겁게 달구며 삶에 대한 애원을 쏟아내게 했다.

소혜낭은 반평생을 살며 수많은 사람을 보아왔지만, 이런 눈빛은 본 적이 없었다.

구걸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보는 이의 가슴을 옥죄어 묘하게 눈물을 자아내는 눈빛이었다.

그녀는 이미 측은지심이 들었으나, 저 노예 상인의 몰골이 쥐새끼처럼 간사해 보이는 것이 영 미덥지 않았다.

섣불리 이 호의를 받았다가 아들에게 번거로운 일이 생길까 걱정되어 다시 거절했다.

“자네 선물이 너무 과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내 아들을 찾아가서 이 일을 말하게.”

진 곰보는 서둘러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대낭, 제가 오늘 바로 장사를 하러 포현으로 떠나야 합니다. 동행하는 형제들이 벌써 성문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고, 소 이형님은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지 않습니까. 제가 시간이 너무 급해서, 이 아이를 거두어주지 않으신다면 저는 어쩔 수 없이 헐값에라도 기루에 팔아넘길 수밖에 없습니다.”

소혜낭은 그 말을 듣고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이 아이를 거두지 않는다면, 제 손으로 청루에 보내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결국 승낙했다.

“그렇다면 사람은 두고 가게.”

진 곰보는 즉시 뛸 듯이 기뻐하며 품 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소혜랑에게 건넸다.

“이 안에 이 계집의 매신계가 들어있으니 소 이형님께 전해주십시오.”

소혜낭은 그것을 받아들고 고개를 끄덕인 뒤, 옆으로 비켜서서 길을 터주며 콜록거리며 말했다.

“날이 무척 추우니 들어와서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게.”

도망치기 바쁜 진 곰보가 감히 이곳에 더 머물 리 없었다.

그는 서둘러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낭. 차는 괜찮습니다. 다음에 다시 소 이형님과 대낭을 뵈러 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잰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소혜낭은 그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온유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착한 아이야, 무서워 말거라. 이제부터 여기가 네 집이니 나를 따라 들어오렴.”

그녀가 손을 뻗어 온유를 이끌려 했으나, 온유는 그대로 고꾸라지듯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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