归鸾 귀란 원작소설 제1장

남진으로 가는 혼인 길 (她要去南陈联姻)

삭풍이 몰아치는 엄동설한, 저잣거리 바닥엔 서리가 하얗게 내렸고, 소달구지가 지나갈 때마다 얼음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칼날 같은 북풍에 온유(溫瑜)의 손발은 이미 얼어 마비된 지 오래였다. 그녀는 감옥 같은 나무 우리 창살에 기대어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얼굴의 태반을 가리도록 내버려두었다.

턱은 얇게 눈이 쌓인 낡은 털 담요 속에 파 묻혔고, 미처 옷으로 가려지지 못한 발목 절반은 밖으로 드러나 진흙으로 뒤덮여 시퍼렇게 얼어 있었다.

발에 대충 꿰찬 신발은 옆면이 해져 너덜너덜해져서, 원래 신발 등에 수놓아졌던 자수가 어떤 문양이었는지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얇은 삼베옷 아래로 드러난 가녀린 등은 활처럼 휘어져 있었는데, 마치 시들어 가면서도 끝내 꺾이지 않은 연꽃 줄기 같았다.

“비켜, 비켜! 길 막지 말고!”

시끌벅적한 저잣거리 가운데, 노예 상인이 채찍을 휘두르며 외치자 많은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고 소달구지 나무 우리 안에 갇힌 몇몇 여인들을 가리키며 수군거렸다.

“진(陳)가네 곰보 녀석이 또 취홍루(醉紅樓)에 사람을 넘기러 가나 보군?”

“이번 수레의 계집들이 다들 반질반질해 보이는데, 열에 아홉은 낙도(洛都)에서 난리를 피해 온 피난민들이겠지….”

“세상이 바뀌면 팔자도 바뀌는 법이지. 대량(大梁) 제일 미인이라 불리는 함양 옹주(菡陽翁主)도 부왕이 등극 하면 대량 공주가 될 몸인데,

지금은 각지의 제후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안달복달하는 노리개 신세가 되지 않았나?”

어떤 이는 쯧쯧 혀를 차며 탄식했고, 어떤 이는 음침하게 군침을 흘리며 탐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수레 위의 여인들은 이런 수군거림을 듣고는 작게 흐느꼈다.

오직 온유만이 나무 창살에 기대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 전체는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낡은 털 담요에 가려져 수레 밖의 모든 시선을 차단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아래 반쯤 감긴 눈은 거의 마비에 가까운 평온함을 띠고 있었고, 차가운 달빛처럼 냉정했다.

도망치는 여정 동안, 그녀는 이미 자신에 대한 이런 부류의 풍문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다.

선제가 붕어하자, 각지의 절도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온(温) 씨 황족은, 바야흐로 천하의 모든 반란군이 사냥하기 위해 사방에서 몰아세우는 사슴 신세였다!

부왕과 오라버니가 전쟁에서 패하여 옛 군인 봉양(奉陽)에 갇혔으니, 이미 활의 힘이 다한 상황이었다.

부왕은 심복들에게 상인으로 위장하여 각지의 절도사들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그녀를 남진(南陳)으로 호송 하라고 명했다.

이는 혼인을 맺기 위함이요, 동시에 군사를 빌리기 위함이었다.

다만 도중에 습격을 당해 심복들과 헤어지고, 노예 상인에게 붙잡혀 이곳으로 오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찬 바람이 더욱 거세지자, 온유는 얼굴에 점점 뚜렷해지는 가려움과 통증을 참으며 묵묵히 코와 입을 낡은 털 담요에 깊숙히 묻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으니, 오늘이 정말 마지막 기회였다.

소달구지가 저잣거리를 지나 두 번 더 꺾으면 곧 화락가에 다다랐다.

노예 상인은 소달구지를 취홍루 앞에 세우고 문 앞에서 청소하는 어멈에게 소리쳤다.

“빨리 당신네 오마마(吴妈妈) 더러 나오시라고 하게!”

잠시 후, 머리에 붉은 꽃을 꽂은 행수 어미(포주)가 온몸을 흐느적거리며 건물에서 나와 하품하며 말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뭘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어?”

어깨가 딱 벌어지고 허리가 굵은 두 명의 장정이 그녀 뒤를 따랐는데, 기세가 꽤 등등했다.

노예 상인은 즉시 아첨하며 웃었다.

“당연히 오마마께 돈줄을 보내드리러 왔지요!”

행수 어미가 노예 상인을 힐끗 보았다.

“말 한번 거창하군.”

노예 상인은 소달구지 나무 우리를 두드리며 누런 이를 드러냈다.

“직접 보시죠!”

행수 어미의 시선이 우리 안으로 향했다.

그녀는 수년간 계집들을 골라왔기에 눈썰미가 날카로웠고, 설령 얼굴을 보지 않아도 골격 만으로도 이 수레에 탄 계집들을 삼육구등으로 나눌 수 있었다.

구석에 있는 온유를 보자마자 그녀는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었다.

“가장 안쪽에 있는 계집은 몸매를 보니 천생 화괴(花魁 최고의 기녀)감이네! 빨리 데리고 나와서 자세히 좀 보자꾸나!”

노예 상인이 아첨하며 말했다.

“역시 마마의 눈썰미는 정확하십니다요!”

그는 수레 우리 쇠사슬을 풀고 온유를 끌고 내렸다.

“이 계집은 콧대가 어찌나 높은지, 몇 번이나 도망치려 했지요. 마마의 돈줄을 망칠까 봐 혼내지도 못하고, 그저 밥 두 끼를 굶겼을 뿐입니다요.”

행수 어미는 노예 상인이 이런 말을 하는 의미를 알았기에 손을 들어 온유의 턱을 잡고 얼굴을 보았다.

“됐어, 만약 용모도 빼어나다면 은자는 섭섭지 않게 쳐줌세.”

노예 상인은 즉시 말했다.

“저 진노육(陳老六)이 장사치 노릇을 수년간 해왔지만, 이 계집보다 더 예쁜 계집은 본 적이 없습니다요.

마마께서 보셔도 양심상 이 계집의 얼굴이 못 생겼다고는 못 하실 겁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행수 어미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마치 무슨 홍수를 본 것처럼 연달아 물러서더니 노예 상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죽고 싶어 환장했어, 이 곰보 놈아? 병든 년을 데려와서 누구한테 팔려고 해?”

행수 어미는 놀라서 얼굴의 살이 떨렸고, 비단 수건으로 방금 온유의 턱을 잡았던 손을 끊임없이 닦아댔다.

노예 상인은 난데 없는 날벼락에 어리둥절하여 온유의 얼굴을 가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확 젖혔다 그 역시 겁에 질려 나자빠질 뻔했다.

출발하기 전만 해도 화용월태 같던 얼굴이, 지금은 온통 붉은 발진과 붉은 두드러기로 뒤덮여 있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바람을 쐰 탓인지, 그 여인은 가슴을 부여잡고 폐가 찢어질 듯 기침을 해댔는데, 누가 봐도 중병에 걸린 모습이었다.

노예 상인은 멍해졌다.

“어…… 어째서 이 모양이 됐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그는 온유의 손을 잡아 발진이 돋았는지 확인하려 했으나, 온유가 기침을 하며 입을 가리느라 소매가 흘러 내렸고, 시퍼렇게 얼어붙은 팔에도 붉은 점들이 빽빽하게 돋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에 질겁한 행수 어미가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성질을 냈다.

“”에라이, 벼락 맞을 진가 곰보 놈아! 이 수레에 탄 인간들 당장 다 데리고 나가!

낙도 난민 중에 염병할 역병이 돈다더니, 이 년 발진 올라온 거 안 보여?

이 판국에 누굴 잡으려고 이걸 여태 밀어 넣어? 어디서 재수 없게 남의 집에 역병질이야!”

이 고함 소리에 화락가의 다른 화루(花樓) 사람들도 고개를 내밀고 기웃거리며 구경했다.

노예 상인은 자기 수레의 다른 계집들은 병이 없다고 다급히 말하며 행수 어미를 쫓아가 한 번만 더 봐달라고 사정했지만, 행수 어미의 손가락질과 함께 호된 욕설 세례를 받아야 했다.

해가 점점 높이 뜨고, 어젯밤 처마에 쌓였던 서리와 눈이 녹아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온유는 기침 소리를 조금 낮추고서, 눈을 내리깔아 발진이 돋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살이 손등을 비추자, 얼어서 감각이 없던 손발에 마침내 온기가 서서히 느껴졌다.

민간에서 역병은 그야먈로 홍수나 맹수와 같아서 한 명이 열 명에게, 열 명이 백 명에게 옮겨 수많은 사람을 죽게 하니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고양이 털에 묘독(猫毒)이 오르는 체질이라, 그 냄새만 맡아도 온몸에 발진이 돋았다.

노예 상인의 손에 떨어진 후 도망칠 방도가 없자, 기루에 팔려 가지 않기 위해 이런 하책을 쓴 것이었다.

지금 같은 시국에 약재는 귀하고, 의원의 진찰비 또한 적은 금액이 아니니, 노예 상인이 그녀를 위해 돈을 써서 의원을 부를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녀가 정말 역병에 걸린 것이라면 의원은 법에 따라 관아에 보고해야 하고, 노예 상인 수중의 다른 여인들도 연류 될 것이었다.

큰 화를 부른다면 의원 또한 책임을 면하기 어려웠다.

그저 노예 상인이 번거로운 일에 휘말릴까 겁이 나 그녀를 내버려두고 제 발로 떠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행수 어미에게 매달려 사람을 파는 데 실패한 노예 상인이 기루의 장정들에게 내동댕이쳐졌다.

“꺼져, 꺼져! 또 질척거리면 그냥 내던지는 걸로 끝나지 않을 줄 알아!”

취홍루 장정들에게 쫓겨난 노예 상인은 한바탕 수모를 겪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그는 장정들이 기루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취홍루 대문을 향해 침을 퉤 뱉었다.

그는 일어나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더니, 온유를 보고는 사람이라도 잡아먹을 듯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 역신 같은 년, 내가 거간 노파(牙婆)한테 큰돈을 주고 널 사 왔는데, 하필 이때 병이 도져!”

그는 손을 치켜들어 온유의 뺨을 때리려 했으나, 붉은 발진이 가득한 얼굴로 온유가 갑자기 미친 듯이 기침을 해대자 멈칫했다.

그녀의 발진이 정말 역병인지 확신할 수 없어 옮을까 두려웠던 그는 결국 씩씩 거리며 손을 거두었다.

노예 상인이 정말 겁을 먹은 것을 본 온유는 계속해서 폐가 찢어질 듯 기침을 하며, 그의 옷자락을 붙잡으려는 시늉을 했다.

“의원 좀 불러주세요, 죽고 싶지 않아요…..”

다른 여인 하나가 온유의 모습에 겁을 먹었는지 울먹이며 말했다.

“저….. 저도 몸이 가려워요, 발진이 돋은 걸까요?”

그 말을 들은 노예 상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온유에게서 멀찍이 물러나며, 눈을 부라리고 소리쳤다.

“너, 너… 거기 서! 오지 마! 감히 나한테 병을 옮기려 해? 죽여버릴 줄 알아!”

그러고는 가렵다고 한 여인에게 소리쳤다.

“소매 걷어봐, 내가 보게!”

그 여인이 울면서 소매를 걷어 올렸다.

시퍼렇게 얼어붙은 멍든 팔에는 아직 발진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긁은 손톱자국이 여러 줄 나 있었다.

노예 상인은 즉시 초조해져 욕설을 내뱉었다. 다른 여인들도 역병에 걸렸다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화루 거리에서 그의 여인들을 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더니 결심한 듯 낡은 삼베 조각을 찾아 온유의 머리부터 뒤집어씌워 발진을 가렸다.

그리고 다른 여인들에게 험악하게 말했다.

“너희를 저잣거리로 데려가서 살 사람을 찾을 테니, 절대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마라. 너희가 역병에 걸렸으니 내 옆에 붙어 있어 봤자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겠지만, 운 좋게 마음씨 착한 주인을 만나면 혹시 살길이 열릴지도 모르지.”

여인들은 겁에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온유는 노예 상인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려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 여인들을 계속 데리고 있다가 나중에 모두 그녀처럼 발진이 돋으면 한 명도 팔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저잣거리에 도착하자 노예 상인이 헐값에 여인들을 처분하겠다고 소리쳤고,수레 안에 있던 여인들은 금세 모두 팔려 나갔다.

노예 상인은 소달구지 앞에 앉아 엽전을 세다가 구석에 있는 온유를 힐끗 보며 낮게 욕을 내뱉었다.

“이 재수 없는 물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원……”

온유는 긴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그녀의 이 계책은 그 여인들이 청루로 팔려 갈 운명을 면하게 도와준 셈이기도 했다.

그녀는 갑자기 다시 처절하게 기침을 해대며 붉은 반점이 가득한 얼굴을 드러내고 가냘픈 목소리를 냈다.

“살려주세요….. 의원은 고사하고, 약이라도 한 첩만 지어주세요……”

노예 상인이 자신을 버리게 하려면, 노예 상인으로 하여금 그녀에게서 이득을 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돈을 써야 한다고 믿게 만들어야 했다.

노예 상인은 본전의 절반도 채 회수하지 못해 속이 타들어가던 참이었는데, 온유가 약을 지어달라고 간청하는 소리를 듣자 기가 차서 웃음이 터졌다.

“이 역신 같은 년아, 네년 때문에 내 장사가 밑졌는데 나더러 약을 지어달라고? 네년 몸값으로 손해 본 돈을 누구한테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당장 길바닥에 나가 뒈져버려!”

말을 마친 그는 온유를 더 이상 상관하기 귀찮다는 듯 채찍을 휘둘러 소 달구지를 몰고 떠나려 했다.

이것은 온유가 바라 마지않던 결과였다. 그녀는 겉으로는 애통한 척하며 발걸음을 옮겨 빨리 이곳을 떠나려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약초를 팔며 지나가던 한 돌팔이 낭중이 말했다.

“이건 무슨 냄새를 맡았거나,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을 먹어서 생긴 풍진이오. 약초 두 첩이면 되니, 수십 푼이면 나을 일이라오. 나으리, 약 두 봉지 사시지요.”

온유의 온몸이 굳어버렸다.

노예 상인도 갑자기 고개를 돌려 그녀를 쏘아보았다.

찰나의 순간, 모든 일이 그의 머릿속에서 하나로 연결되었다. 노예 상인이 이를 갈며 말했다.

“오호라, 네년이 감히 나를 속여!”

그는 채찍을 든 채 소달구지에서 뛰어내렸다.

온유는 입술을 깨물며 약을 팔려고 입을 놀린 그 돌팔이 낭중을 밀치고 도망쳤다.

노예 상인은 뒤에서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화를 냈다.

“천한 년! 감히 도망을 쳐! 나한테 이만큼 손해를 입히고도 살 줄 알았느냐, 네년을 때려죽여 주마!”

기름기가 돌아 반질반질한 채찍이 찬바람 속을 휘저으며 ‘훽’ 하는 날카로운 파공음을 냈다.

온유는 전력을 다해 앞으로 달렸지만, 끝내 그 채찍을 피하지 못했다.

등 뒤가 마치 독사에게 쏘인 듯했고, 거친 삼베옷 위로 핏자국이 배어 나왔으며, 불에 타는 듯한 작열감이 순식간에 상처에서 온몸으로 번졌다.

그녀는 신음 소리를 내며 바닥에 고꾸라졌고, 추위에 감각이 없던 팔꿈치와 무릎 관절이 부딪혀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노예 상인은 이미 쫓아와 다시 채찍을 휘둘렀다.

“도망쳐? 계속 도망쳐 보라고!”

그 채찍질은 마치 이전의 상처 부위를 노린 것 같았다.

아팠다.

너무 아팠다.

온몸이 그 채찍에 두 동강이 나는 것 같았다.

온유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런 모진 매질을 당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바닥에 웅크린 채 고통을 참느라 입술이 터져 피가 흘러나왔다.

동상으로 보랏빛이 돌고 반점이 가득하지만 여전히 가느다란 손은, 눈이 녹은 뒤의 진흙탕을 움켜쥐었고, 차가운 눈동자는 노예 상인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분명 연약해 보였으나, 호랑이나 이리 같은 사나운 독기를 품고 있었다.

노예 상인은 그 눈빛에 깜짝 놀라 세 번째 채찍질이 한 박자 늦어졌고, 그 틈에 뼈마디가 굵은 커다란 손이 채찍을 가로막았다.

“어떤 눈먼 놈이 감히 이 진 어르신의 일에 참견이야……”

노예 상인은 한창 화가 나 있던 터라 입을 열자마자 욕설을 내뱉었지만, 고개를 돌려 상대방을 확인하자마자 벙어리라도 된 듯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고 쌓인 눈이 녹아내리며, 거리를 따라 늘어선 집들의 처마 아래는 온통 물방울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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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내는 키가 매우 커서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 온유 앞의 햇빛을 완전히 가렸다.

그녀는 식은땀이 맺힌 눈꺼풀을 들어 올렸고, 미처 거두지 못한 서슬 퍼런 눈빛이 그대로 나른하면서도 야성적인 검은 눈동자와 부딪혔다.

상대는 ‘기루의 여인들이 누각 위에서 붉은 소매를 흔들며 반길’ 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려한 눈매에 잘생긴 눈썹을 가졌으며,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인 채 입가에는 대나무 이쑤시개 반 토막을 물고 있었다.

노예 상인의 채찍을 막아낸 팔은 팔꿈치가 살짝 굽어 있었는데, 거친 무명옷 아래로도 근육의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그는 시선을 담담하게 온유에게서 노예 상인으로 옮기더니, 손을 놓고 발을 들어 노예 상인을 걷어차 진흙탕 속에 엉덩방아를 찧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어 아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는 듯한 한가로운 말투로 말했다.

“오! 진형, 형제들이 한참 찾았잖아!”

건들거리면서도 악랄한 말투였다.

시장 반대편에서 건장한 사내 둘이 걸어와 팔짱을 낀 채 버티고 섰다. 노예 상인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한 것이다.

알고 보니 원수를 갚으러 온 모양이었다.

온유는 바닥에 엎드린 채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관자놀이에는 고통으로 식은땀이 흘렀고, 풀어진 머리카락은 뺨 주변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긴 속눈썹 위로 옅은 햇살이 내려앉아, 마치 갓 고치를 뚫고 나온 나비의 날개처럼 보송보송 빛났다.

한편, 노예 상인은 청년을 보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진흙 바닥에 주저앉았다.

진흙 바닥에 주저앉은 꼴이 마치 오물과 한 몸이라도 된 듯 처참했다.

그는 두 다리를 사시나무 떨듯 부들거리며 더듬더듬 목소리를 냈다. “소… 소이 형님(萧二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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